시집에서 읽은 시

귀뚜라미/ 서하

검지 정숙자 2010. 10. 19. 01:52

  

    귀뚜라미


       서하



   옷 수선하는 아랫마을 봉자 이모,

   딸을 내리 여덟 낳고는 귀 틀어막고 살았어

   틀어막아도 틀어막아도

   -그 배는 무신 배길래

    기집이 글키나 마이 들어 안자쓰꼬

   귀뚤귀뚤 어른들의 잔소리 그칠 줄 몰랐고

   그 소리 바늘구멍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 같았어

   잔뜩 엎드려 지내던 어느 날

   바늘귀 끼우듯 어렵게 아들 하나 얻었어

   봉자 이모부 나팔꽃 벙근 듯한 귀 펄럭이며

   수수밭 지나 미역 사러 가던 길,

   물미역처럼 미끄러운 길바닥에서

   뜻밖의 사고로 고장 난 재봉틀처럼 멈춰 섰어

   밤길은 우산 한 장 덮어주지 않았고

   혼자 내리는 비가 그를 가늘게 덮어주고 있었어

   밑실과 함께 오래 풀리는 동안,

   -그 길은 무신 길이길래 가서는 올 줄 모리는고

   귀뚤귀뚤 풀섶 눈동자만 글썽이며 반짝였어



   *시집『아주 작은 아침』에서/ 2010.9.5 <시안>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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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 경북 영천 출생, 1999년『시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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