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미연_학시일체(學詩一體) 시세계의 탐구(발췌)/ 밥 냄새 : 오탁번 1

검지 정숙자 2021. 6. 13. 14:28

 

    밥 냄새 1

 

    오탁번

 

 

  하루 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 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 언놈이 밥먹이고 가요

  그제야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밥소라에서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을

  내가 허둥지둥 먹는 걸 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 밥 때 되면 만날 온나

  아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은

  진외가 집에서 풍겨오는 밥 냄새를 맡으며

  겨우 숨을 이어갔다

     -전문-

 

  학시일체學詩一體 시세계의 탐구(발췌) _김미연/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이 어느 날 우리말을 고르고 찾아내는 의식이 생기게 되면 일단 유년의 체험으로 쏠리게 되어 있다. 인용시가 그런 경우에 속할 것이다. 유년은 인간 삶의 원형이므로 자연스레 원형적 언어를 톱니처럼 끼고 있을 터이다. 시인은 유년의 한지점을 포착하게 되면 딸리어 나오는 유년 언어를 의식하지 않아도 이삭으로 줍듯이 획득할 수 있다. 힘 들이지 않고 토박이 언어를 거느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루 걸러, 업고, 진외가집, 풍겨오는, 맛있는, 보채면, 장지문, 진외당숙모, 언놈이, 밥소라,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 하둥지둥, 만날 온나, 목소리, 젖을, 굶주리는, 밥 냄새, 숨을" 등 힘쓰지 않고 그 체험에 그 언어인 것이다. (p. 시 103/ 론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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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1-여름(82)호 <현대시인열전 ⑩ 오탁번 편>에서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