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사람
신철규
두터운 유리판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갇힌 사람이라고 부른다.
넌 갇힌 사람이야.
흰 돌과 검은 돌이 들어 있는 주머니가 있다.
꺼낼 때마다 검은 돌이었다.
흰 돌이 나올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내가 가지 않은 곳에 나는 있었고
내가 말할 수 없는 곳에 나는 있었다.
나는 사람이었고 사람이 아니다.
머릿속에 물이 가득 찬 것처럼 조금만 고개를 기울여도 휘정거렸다.
한번 떠오른 것은 가라앉지 않았다.
썩고 나서야 떠오르는 것이었다.
흐린 물속에 잠겨 있는 틀니 같은 그믐달.
새 한 마리가 밤하늘을 바느질하며 나아간다.
점선처럼 톡톡 끊기며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 입술에 가득 묻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입술을 뜯어냈다.
심장을 손아귀에 넣고 꽉 쥐고 있는 손이 있다.
천장에 붙어 있는 풍선들.
실을 꼬리처럼 매달고
천창을 뚫고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난 것들.
나는 네 앞에 서 있다.
잿빛 장미를 들고
-전문, 『현대문학』 2021-2월호
▶ 생에 대한 인식의 재발견, 그 도저한 시간으로의 탐색(발췌) _이령/ 시인
'두터운 유리판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갇힌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인식의 양태다. 동시대 동일한 규범과 제도 내에서 공생하는 사회구성원이며 동질성 내의 차이가 시간에 의해 변환되고 이것이 특수성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나와 다른 이는 기본적으로 갇힌 사람일 수밖에 없다. 갇힌 것은 다른 의미로 열려있다는 의미전제를 수반하는데 이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다단한 갈등이 생겨난다. 다른 것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닌데 인간은 자신의 의식 안에서 현상과 관계를 규정하기 때문에 갈등을 불러오고 상대적 결핍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이고 왜곡된 내재성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내재성에 대한 사유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시에서 시적주체는 좀 더 자기 자신의 본질적 내재성에 근접하고자 하는 사유의 깊이를 던지고 있다. 상식이라는 통념에 반하는 역설을 가미하여 이 시는 의미가 확장된다. (p. 시 306-307/ 론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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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람』 2021-여름(100)호 <편집위원이 읽은 지난 계절의 좋은 시>에서
* 이령/ 2013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시인하다』『삼국유사 대서사시-사랑편』, 저서『울진대왕소나무발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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