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저편
이승하
유리벽 저쪽에 누이동생이 앉아 있다
휠체어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다
오빠아······ 머리 다 센 파파할머니가
우는 듯 웃는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까 힘을 내라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붙들어 지킬 신념이 죄다 사라졌다 그게 죄다
살아 있으니 억지로 살고 있는 것
살게 하니까 간신히 살고 있는 것
걸어온 길은 새벽녘 안개처럼 어슴푸레하였다
김천시 성내동 201-1번지에서 20년을 견디다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인내는 늘 쓰디썼고
광증의 나날은 빚 독촉처럼 가혹하였다
면회는 오래 금지 겨우 전화 1년 만에 화상통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돈을 보내고
멀리서 전화가 오면 돈 돈 돈 쯧 쯧 쯧
생명을 어떻게든 연장하며 오라비는 유리벽 이편에서
-전문-
▶ 시적인 것에 대한 현실 인식(발췌) _ 박철영/ 시인, 문학평론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사람들과의 분리가 당연시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유리벽 저편」이란 시도 작금의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된 현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단번에 무너뜨려버린 것에 대한 공포는 아직도 전 지구적인 두려움의 대상이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 현상을 요구하고 그 환경에 적응해가야 한다. 자본주의적 사고와 무한 경쟁으로 이룬 문명의 향상된 생활 편리가 일순간 붕괴되는 현실을 경험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재앙적 혼돈으로 인해 가슴 아픈 실상이 시인의 가족인 "유리벽 저쪽에 누이동생이 앉아 있다"며 현실로 다가온 것 같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병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전염을 우려한 격리를 당할 수밖에 없고 냉엄한 국가에서 통제하는 사회 규칙에 따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리벽'은 단순하게 병실 안 환자와 보호자 사이를 가로막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약한 인간이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진 '국가권력'이거나 '코로나19'라는 괴물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한 소시민의 삶을 저지하고 있는 힘을 가진 유리벽을 통해 시인은 누이를 바라본다. '유리벽' 너머 위기에 처한 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시인은 안타까울 뿐이다. "살아 있으니 억지로 살고 있는 것/ 살게 하니까 간신히 살고 있는 것"이라는 세기말적 바이러스로 변해버린 펜데믹의 현실이라는 벽에 단단히 갇힌 누이는 아직도 상황을 재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전면적인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유리벽 저편'이라는 현실을 통해 실감토록 한다. (p. 시 267/ 론 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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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람』 2021-여름(100)호 <신작소시집/ 신작시/ 시론>에서
*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우리들의 유토피아』『예수 폭력』등, 평전『마지막 선비 최익현』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등
* 박철영/ 2002년『현대시문학』으로 시 부문 & 2016년『인간과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꽃을 전정하다』등, 평론집『해체와 순응의 시학』, 전자북 평론서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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