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안지영_불과 얼음의 시간(발췌)/ 얼음의 일 : 장석남

검지 정숙자 2021. 5. 29. 12:48

 

    얼음의 일

 

    장석남

 

 

  조선 무쇠 솥을 길들여 난로 위에 얹고

  물을 부어 끓이네

  물이 끓으면

  물이 끓으면

  밤은 덩달아 깊고

  되돌아 갈 수 없이 깊어지면

  저편 하늘은 비어

  또 동구 밖으로 나설 일 생길 거야

  묵은 가위를 닦고

  걸레를 빠네

     -전문-

 

   불과 얼음의 시간_장석남의 시(발췌) _안지영/ 문학평론가

  장석남 시의 복고주의는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설적이지만 이는 그만큼 신자유주의 시대에 속물적 주체에서 벗어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속물적인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성한 자연까지 호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자연인들이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 자기를 격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처럼. 자연인 중에는 IMF 이후 사업 실패로 산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 이상 실패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자연을 택했고, 그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간의 서정시에 대한 2000년대의 비판을 떠올리면 '자연인'에 대해서도 불편한 마음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7) 나는 이들이, 그리고 장석남의 시적 주체가 자연에서 평온을 찾게 된 것이 일단은 다행스럽다. 산나물을 캐고 버섯을 채취하며 자연을 돌보는 이들의 자세에선 누군가의 고요와 평온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그러한 자세를 자연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것의 '세계의 자아화'와 같은 일방적 사랑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장석남의 시가 가는 길을 계속 지켜봐야겠다. [p. 시 81/ 론 98]

 

  7) 사실 '자연인' 대부분이 장애가 없는 중년 남성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조금 배신감을 느꼈다. 자연인처럼 살 수 있는 것도 나름의 특권은 아닐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무사 평정한 그들의 삶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결국 일종의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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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 2021-봄(59)호 <이 계절의 초대시인/ 신작시/ 작품론>에서

   * 장석남/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뺨에 서쪽을 빛내다』『물의 정거장』『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등

   * 안지영/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 『천사의 허무주의』『틀어막혔던 입에서외, 역서 『부흥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