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형철_창백한 푸른 점 하나, 6시에는(발췌)/ 가만히 바라보면 : 한용국

검지 정숙자 2021. 5. 24. 02:03

 

    가만히 바라보면

 

    한용국

 

 

  멀리서 오는 신호들이 있다

  

  모여 있기도 하고

  홀로 깜박이기도 한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만

  표정을 갖지 못한 것도 있다

  아프다는 뜻일까

 

  가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던

  눈물을 다 흘린 뒤에

  하늘을 보며

  바람 속에 서서 바람을 밀던

 

  나무들이 있다

  돌아갈 수 없어 발 동동 구르는

  날짜들이 있다

  하나의 날씨 그림자는 수만 개

  손닿지 않아 오래 바라보면

  눈 멀고 마는 잎들을 매달고

 

  반짝이기 위해서

  연습이 필요한 자세들이 있다

  냄새 없는 바람 속에서

  솟구치는 자세를 흉내 내는 발들이

  언제 도착할지 몰라

  시계만 바라보는 눈들이 있다

 

  익숙한 빛으로는 옮길 수 없어

  길의 온도를 따라 걸어가면

 

  하릴없이 채인 돌의 마음 너머

  눈이 내리고

  멀리로만 눕는 낮은 지붕들 위로

  가만히 일어서는 어진 얼굴들이 있다

     -전문-

 

  창백한 푸른 점 하나, 6시에는(발췌) _전형철/ 시인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해왕성을 지날 때 카메라를 지구로 돌리게 했다. 그리고 보이저 1호는 태양계 저쪽 '창백한푸른 점 하나'를 송신한다. 자체만으로 경의를 느끼게 하는 이 사진은 한 세계의 새로운 의식을 연 상징이 됐다. 지구. 우주의 한 티끌에 불과한 행성. 사람들은 그 안에 수많은 역사와 쟁투의 덧없음에 겸손해지기도 했지만,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 안 70억 인구에게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하나의 또 다른 우주임을 상기시켰다. 기적임에 틀림없는 단독자의 삼라만상이, 거기뿐 아니고 여기에도 있으며 인지와 비인지와 불인지가 다시 여기뿐 아니고 거기에 있음을 무연히 목도했던 것이다. 

  (······)

 

  지구라는 특이한 공간 안에 그리고 더 특별한 생활 안에 우리는 "모여 있기도 하고" 각각이 "홀로 깜박"이며 무수한 별자리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감정이 다한 이후에, 그것을 뛰어 넘은 이후에 보이는 "나무"처럼 시인은 우리에게 반짝이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p. 시 199-200/ 론 205 (······) 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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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산맥』 2021-여름(46)호 <시산맥이 찾아가는 시인/ 신작시/ 작품론>에서

   * 한용국/ 2003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

   * 전형철 200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고요가 아니다』『이름 이후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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