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채길우
아는 만큼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이는 병자다.
확실하고 부재하는 장면들이 더 많이 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이해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내가 건강하다고 말한다.
강자들은 내가 미쳤다고 말한다.
눈에 어른거리던 유령들은
긴 복도를 관통해 사라져가면서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보호자 없이 갇힌 실내에서
나는 진실도 섬망도 아니었지만
밥을 구해 먹고 대접을 받으며
투명하고 깨끗한 단체복
한 벌을 얻어 입을 수 있었고
어느 날은 아무도 없는 뜰로 나간다.
커다란 나무가 올려다보이는 그늘에 쪼그려 앉아서
빛이 보여, 빛이 보여, 발작을 해가며
어둠 속에서조차 부신 눈을 뜨지 않은 채
나는 없는 것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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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1-여름(46)호 <신작시>에서
* 채길우/ 2013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매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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