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21. 5. 23. 13:05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

 

 

  두개골 속 1.5킬로 고깃덩어리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도대체 사랑이란 게 있긴 있는가

  이런저런 것들을 캐묻는다

  자다가도 묻고 울다가도 묻고,

  이 세상에 보이는 건 모두 가짜 아닐까

  이 얼음 같은 사탕도 착각 아닐까

  물질이 자유의지를 갖고 물질을 와드득 깨물고

  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또한 누구의 희미한 기억 속일까

  무중력의 공간을 달려가는 그리움은

  백만 미터고 천만 미터고 거침없이 계속 달려간다

  잡을 수가 없다, 그대여 슬픔이여

  내 육신은 고작 백 미터도 도망치지 못하는데

  생각의 꼬리에 매달려 캄캄한 우주를 홀로 유영하는

  나는 누구의 꿈속에서

  그림자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일까

  에포케!

  다시 동굴로 들어가자

  뇌가 평생 갇혀 사는 그곳으로,

  살아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곳에서

  낡은 세포는 다 갈아치운 새 물질로

  내일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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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산맥』 2021-여름(46)호 <신작시>에서

   * 정채원/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슬픈 갈랄레이의 마을』『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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