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불온한 오독(誤讀)/ 김양숙

검지 정숙자 2021. 5. 8. 01:10

 

    불온한 오독誤讀

 

    김양숙

 

 

  퇴근길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들어 얼마나 걸었을까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굵직한 사내의 음성이 발자국을 잡아 당겼다

  등뼈를 뻣뻣이 세우고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다시 부르는 소리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길바닥에 발자국을 꾹꾹 눌러 찍으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걷는데

 

  다시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마지못해 돌아본다는 느낌으로 돌아서 사내의 목소리를 찾았다

 

  들어올 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골목 어귀에 세워진 생선 트럭

  순간 사내의 목소리에서 오래된 비린내가 확 풍겼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숙이고 돌아서는데

  다시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

  행간은 지워지고 음절로 끊겨 뚜렷하게 들리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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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0-겨울(36)호 <시인 조명>에서

   * 김양숙/ 1952년 제주 출생, 1990년『문학과 의식』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