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카르마의 눈 외 1편/ 강은진

검지 정숙자 2021. 4. 15. 16:58

 

    카르마의 눈 외 1편

 

    강은진

 

 

  엄마, 죽은 사람은 유리창처럼 투명해요

  엄마도 알죠? 노랑색 셀로판지로 보는 느낌

  모양은 없었지만 난 그것이 할아버지라는 걸 알았어요

  엄마, 그런 건 느낌으로 그냥 아는 거예요

 

  내가 알아보면 놀라실까 봐 못 본 척 지나가는데

  이상하게 슬퍼졌어요

  거기서 슬픈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 같았거든요

 

  그날 밤 할아버지는 파랗게 빛나고 있었어요

  물고기 알처럼 투명해서 할아버지 뒤로 빈 의자도 보였어요

  달처럼 둥둥 뜬 채 앉아서 나를 보며 조금 웃었지만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엄마, 슬픈데 안 슬플 수도 있어요?

  할아버지는 꼭 그런 것 같았거든요

  나를 보고 안녕, 하듯이 손을 한 번 흔들었는데

  손바닥에서 파란빛들이 빙글빙글 돌다 사라졌어요

  할아버지도 금세 사라져 버렸어요

  나는 잠깐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요

 

  엄마, 엄마는 정말 못 봤어요?

  할아버지가 엄마를 지나서 걸어갔는데도요?

  어디선가 까만 연기처럼 갑자기 피어올랐는데요

  키가 작고 조금 뚱뚱했고 얼굴도 몸도 다 까만데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잘 쓰고 다니시던 그 회색 모자 있잖아요

  천천히 천천히 엄마랑 강아지를 지나고 벽을 통과해서 방으로 들어갔어요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신 것처럼요

  파란 별들이 할아버지를 맴돌다 함께 사라졌어요

 

  하지만 엄마,

  난 이제 할아버지가 어디엔가 계속 있다는 걸 알아요

 

  발도 없었는데 어떻게 걸었을까요

  엄마, 할아버지는 구름이 되었나 봐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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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 중독

 

 

  나를 스쳐 지나며 당신은

  작은 바람을 일으켜 내 속눈썹을 살짝 흔들었는데

  어디선가 티라미수* 냄새가 났어

  그건 아마 당신의 작별 인사

 

  너무 달콤해서 목이 아리던 그걸

  우린 어째서 서로 떠먹여 주고

  병든 시인들처럼 기침을 해댔던 걸까

 

  당신이 떠나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눈을 감고

  뭉개진 케이크처럼 앉아 있었어

  엉뚱한 기도문 같은 걸 외면서  

 

  티라미수엔

  피처럼 끈적한 커피와

  덜 익은 와인도 함께 들어 있다는 거

  그땐 몰랐었잖아

 

  모양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붙여 주며

  당신은 달다는 말을 위험하다는 말로 바꾸곤 했지

  단맛은 혀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거라서

  먹을수록 나는 텅 비어 갔나 봐

 

  그때의 케이크는 이미 먹어 버렸고

  우리가 붙여 줬던 이름들도 이젠 지워지고 없으니까 

  이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나를 끌어올려

  하얗게 타오르는 구름 기둥처럼

  달콤하고 위험한 이 기분의 끝으로

      -전문-

 

 

   * 티라미수: 'Tirare mi su(나를 끌어올리다)'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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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달콤 중독』에서, 2020. 10. 26. <파란> 펴냄

   * 강은진/ 서울 출생,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