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비에서/ 백인덕

검지 정숙자 2021. 4. 5. 18:26

 

    고비에서

 

    백인덕

 

 

  눈이 오는데

  한밤의 서러운 칼질

  핏기 없이 눈만 쌓이는데

  틈 없는 곳 따라

  초입조차 가르지 못하는 칼질

  노동인지

  놀이인지 모르는 집중

 

  초저녁,

  아무나 되고 싶은

  불안의 웅덩이에 눈발 희끗대고

  언제나 그러하듯

  나태의 열정으로 꺼내든 책

  시작의 무심한 손가락 끝에

  자꾸 마른침 바르다

  권태가 끝난 바로 거기

  뒷장에는 다시

  숱한 열망이 캄캄하게 식는데

 

  반드시

  그 무엇인가 있을 것 같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페이지 하나 세워

  새 칼로 양면을 가른다.

 

  세상에는

  눈이 오다 그치고 여전히

  제 목에 주먹을 밀어 넣는 사람들

  서러운 아직은

  한 말씀도 만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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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여는 세상』 2021-봄(77)호 <신작>에서

   *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북극권의 어두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