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효은_그레텔을 위하여(발췌)/ 서정 : 김경인

검지 정숙자 2021. 4. 5. 17:48

 

    서정

 

    김경인

 

 

  바닷마을에 갔었네

  사랑하려고

  겨울 한껏 낮아진

  겸손한 지붕들을 돌아 나오다

 

  보았네

 

  멀리서

  푸른 하늘 아래

  순한 슬픔처럼 나부끼는 

  희디흰 빨래들을

 

  나는 천천히 다가갔지

 

  수백 오징어들이 줄줄이 꿰여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네

 

  오장육부가 능숙하게 도려내진 채

  전시되는 투명한 내부

 

  저 멀리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참혹뿐인

    -전문- 

 

 

  그레텔을 위하여(발췌) - 김효은/ 문학평론가

  무수한 죽음과 주검을 "서정抒情"으로 "시멘트처럼 발라 건축"하거나 치장해서 아름답고 슬프게 노래하는 자, 그의 이름은 시인詩人이다. 다시 톨스토이를 언급하지 않아도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 하늘 아래/ 순한 슬픔처럼 나부끼는/ 희디흰 빨래들"의 낭만도,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는 죽음과 주검의 "투명한 내부"도 인생이다. 김경인 시인 역시 인생은 "저 멀리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참혹뿐인" 현실이라고 진술한다. 다만 그 아름다움에 눈멀기 위해 "사랑하려고" 다가간 그 능동형의 마음과,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마주하게 된 "참혹"과 처참함의 마음을 생각한다. 이 둘 다 그려내는 자. 환상과 현실, 낭만성과 핍진성, 일상과 이상, 둘 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서정이고 시인의 일이 아닐까. 끝으로 그녀의 시 「서정」을 읽으며, "사랑하려고" "사랑"을 만나기 위해 떠날, 미지의 "바닷마을"을 상상해 본다. 눈을 감으면,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p. 시 54-55/ 론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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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여는 세상』 2021-봄(77)호 <집중조명>에서

  * 김효은/ 시인, 문학평론가, 2004년 ⟪광주일보⟫로 등단, 2010년 『시에』로 평론 등단, 저서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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