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검지 정숙자 2021. 4. 3. 03:11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處女(처녀)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난야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萬里(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무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人迹(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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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여는 세상』 2021-봄(77)호 <나의 첫 시집_대표시>에서

   * 강은교/ 1963년 『사상계』로 등단, 시집 『허무집』 『벽 속의 편지』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등, 시산문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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