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대들보/ 함명춘

검지 정숙자 2021. 3. 31. 02:31

 

    대들보

 

    함명춘

 

 

  할아버지가 대들보에 목을 매자

  청수의 아버지는 그곳에 금줄을 쳐놓았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도 그곳에 목을 맸기 때문이다

  집안에 있는 줄이란 줄은 모두

  불경스런 것으로 여겨 내다버렸다 몇 년 후

  청수의 형이 그곳에 목을 맨 것이 발견되었다

  금줄이 오히려 목을 맨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청수 아버지도 자책을 하다가 대들보에 목을 맸다

  청수는 전기톱을 들고와 그것을 잘라버렸다

  순간 지붕이 무너져 그도 깔려 죽었다

  청수네 대가 마침내 끊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청수네 집을 불태웠다

  끝내 타지 않는 대들보는 땅에 묻어버렸다

  땅에선 자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나던 스님이 주민들을 불러 땅을 파보라고 했다

  대들보는 천상에 살던 새였다 지상의 나무인

  소나무에 앉아 노는 게 너무 좋아

  해가 지면 천상으로 돌아가야 할 규율을 어겨

  하늘이 소나무로 천 년을 살다 오라고 한 것이다

  천 년을 꼭 하루 남겨 놓은 날

  가문의 영속을 기리는 대들보로 쓰기 위해

  청수의 증조할아버지가 소나무를 베어버린 것이다

  스님은 땅 위에 대들보를 바로 세워 심어 주었다

  몇 해를 불공드리며 물을 줘 다시 소나무가 되었다

  천 년을 또 소나무로 살아야 했다

  한 가문을 몰락시킨 것에 하늘이 또 노한 것이다

  소나무는 하늘보단 조금이라도 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땅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소나무 품이 깊어져 갔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떠받쳐주는 대들보가 되어갔다

  소나무 주변엔 깃털들이 수북했다

  소나무는 집채만 한 새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날아오르기 위해

  큰 새가 자꾸만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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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0-겨울(104)호 <신작특집>에서

   *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무명시인』『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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