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리 오층석탑* 외 1편
김윤현
부처가 득도한 후 부처는 우리 곁으로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언제 오나 탑이 뾰족하게 고개를 들고 기다렸지만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 했으니 올 필요도 없겠다는 건지
대웅전도 없으니 탑 부근이 다 대웅전이라 여기면 어떨까
목탁소리도 없으니 해탈도 처음부터 없는 일이라 보면 안 될까
탑리 오층석탑 앞에 서 보면 알겠다
소나무 한 그루, 패랭이꽃, 편하게 돋아있는 풀, 주변으로 보이는 민가들이 정겨워 다들 부처를 대신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부처는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들이 다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라 했으니
탑리에는 탑리 오층 석탑만 있어도 그만이다
-전문-
*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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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板殿
- 추사를 기리며
높고 낮은 산을 돌고 돌아 강물이듯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앞에서
눈과 마음에 매달렸던 것 다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오고 있다
누가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다 했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길
기교을 버려 기교에 이르듯
완성을 버려 완성에 이르려는 걸까
처음으로 돌아오고 있다
천 자루 붓이 모두 몽당붓이 된 후에
처음 잡았던 붓으로 돌아오고 있다
평생의 무게로 돌아오고 있다
옷걸이 없이 옷을 걸어놓은 듯
어린 아이의 눈과 마음을 담은 듯
처음으로 돌아오는 신비
눈이 부신다
-전문-
* 봉은사 경판을 보관하는 집 현판으로 추사가 죽기 사흘 전에 썼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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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2020-겨울(19)호 <사이펀의 시인들/ 신작시>에서
* 김윤현/ 1984년 『분단시대』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발에 차이는 돌도 경전이다』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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