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미궁/ 김참

검지 정숙자 2021. 3. 13. 18:34

<2020, 제5회 사이펀문학상 당선작>

 

    미궁

 

    김참

 

 

  사흘 내리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구층 우리집도 눈 속에 파묻혔다. 냉기 도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을 박살내고 들이닥친 눈이 우편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오월도 끝나 가는데 무슨 눈이 이토록 퍼붓는단 말인가. 누군가 뚫어놓은 통로를 따라 막장 광부처럼 조심조심 걸었지만 눈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언 손 비비며 천천히 걷다 발을 헛디뎌 다른 통로로 굴러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사람 몇이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온기도 생기도 없었다. 어두운 통로를 휘감고 돌며 낮은 기타소리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한참 걸었지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언 손 불어가며 길을 내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배고프고 춥고 졸음도 쏟아졌으나 잠들면 얼어 죽을 것 같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톱까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눈을 파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 누가 있냐고, 아무도 없냐고, 아무도 안 계시냐고, 커다랗게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이펀』 2020-여름호

 

  

    * 심사위원: 강은교  김성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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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펀』 2020-겨울(19)호 <제5회 사이펀문학상 당선작>에서

   * 김참/ 1973년 경남 사천(삼천포) 출생,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등, 저서 『현대시와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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