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율리 스텍*/ 송소영

검지 정숙자 2021. 2. 27. 16:06

 

    율리 스텍*

 

    송소영

 

 

  아이거 북벽 아래 찍혀있는

  그의 단단한 오른 손바닥에서, 끝이 뭉툭한

  지문 없는 손가락들이 오늘도 꿈틀거리고 있다

  에베레스트 눕체봉을 향해 피어나는 불꽃처럼

 

  그린델발트가 내려다보이는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폭포 앞

  그 남자가 훈련 삼아 뛰어다녔을 언덕에서

  나는 조금도 뛸 수가 없었다

  그 강렬한 에너지, 눈빛을 따라 이곳까지 왔지만···

  북벽에 붙어 있는 건조한 손을 잡고

  바위를 뚫고 흘러가는 물길을 그저 같이 걸을 뿐

 

  그는 왜, 늘 혼자서 직벽에 매달렸을까

  어두운 영하 20도의 안나푸르나 남벽 28시간 등반도

  외로움의 속도엔 역부족이었을까

  결국 그렇게

  율리 스텍은 크레바스로 수직 낙하했다

     -전문-

 

 

    * 율리 스텍: 2017년 4월 30일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한 고난도 루트의 속도등반으로 유명한 스위스 등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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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현실』 2020-겨울(82)호 <신작시> 에서

    * 송소영/ 2009년 『문학 · 선』으로 등단, 시집 『사랑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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