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나멘*
김영찬
건방진, 이라는 이름의 방파제와 갈매기 주름살, 이라는
묵적어가 공존한다
두 표제는 이유도 없이 맞부딪혀
파도의 높낮이만 따지는 관계
어쨌든 입술부터 적시고 난 뒤에 살펴 볼 일
빈잔
빈속에 생소주가
공복의 항구를 접수한다
취기가 안식년처럼 어질어질
어제 보았던 오늘은 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내일과
이렇게나 닮은 것일까
먹지도 않을 안주를 쇠젓가락으로 휘적휘적
위장에서는
출항을 재촉하는 뱃고동소리가 난다
나뒹구는 술병과 격랑의 술잔이 엎어진 부두에
어제 만난 청년과
오늘 찾아온 노인은 묘하게도
한통속일 뿐
심폐기능의 차이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착시현상
시건방진 너울의 광란에
안경알이 부서진다
볼벡(Bollwerk)**을 뛰어넘는 해일,
낡을 대로 낡아 흘수선조차 마모된 배 밑바닥 안으로 파고드는
파도소리
그 곳에
발가락 간질이는 치타델렌(zitadellen)***이 있다
하릴없음의 씀씀이와 씀씀이 없는 날들이 지루하게 정박 중인
시간
소낙비 한 줄금 뿌려 번쩍 정신 든 가슴의 기항지에
클리나멘의 배를 띄운다
파도가 달려나와 난삽한 발자국들을 단박에 거둔다
-전문-
* 클리나멘(clinaman): 괘도에서 잠깐 벗어남, 일탈, 탈주
** 볼벡(Bollwerk): 방벽, 부두, 방파제
*** 치타델렌(zitadellen): 성채 안에 또 하나 아성牙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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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20-겨울(74/終刊)호 <이 계절의 신작시> 에서
* 김영찬/ 2002년 『문학마당』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투투섬에 안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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