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0회 한국예술작가상 수상작> 中
눈 내리는 방 외 1편
김재윤
어머니는 새로 산 시계를 형님 팔목에 채웠다
마당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형님이 읽었던 책을 태웠다
등에 업힌 눈이 하염없이 훌쩍였다
아무 말 없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형님이 입었던 옷을 태웠다
등에 눈물로 끌 수 없는 불이 번졌다
"날도 추운데 왜 나오셨어요"
"날이 춥다 어서 방으로 가자"
형님 제사가 끝난 뒤
촛농 묻은 촛대를 몇 번이고 닦았다
남아 있는 책들
어머니는 탁상시계 태엽을 감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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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형님이 다녔던 대학에서
형님에게 보낸 우편물이 도착했다
의문사로 세상을 떠난 형님의
대학원 등록금을 찾아가라는
통지문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등록금이라도 대학에 두고 있어야
형이 공부를 할 수 있다며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셨다
서울에서 재수하던 나는
어머니 옷장 깊숙이 놓여 있는 통지서를 꺼내
서울로 왔다
대학 정문 앞에 도착하자
발이 자꾸 머뭇거렸다
학교 정문 앞 건물 지하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늘 우유를 주문했던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가 탁자 위에 놓이는 순간
조안 바에즈의 "The River In The Pines"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에 따라
사물들이 하나하나 멈춰섰다
한 장면씩 한 장면씩 정지됐다
모든 게 멈췄다
그 노래를 켠 커피숍 주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계산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나도 정지되어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 계좌로 등록금을 입금한 뒤
공중전화로 어머니께 전화했다
벽에 걸린 형님 사진이 담긴 액자와
어머니 사이로 강이 흘렀다
-전문-
*심사위원: 이지엽_시인 · 경기대 교수/ 유성호_문학평론가 ·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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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 2020-겨울(97)호 <제10회 한국예술작가상 수상작> 에서
* 김재윤/ 제주 서귀포 출생, 문학박사,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고정 게스트, 제17, 18, 19대 국회의원, 현재 탐라대학교 교수 · 세한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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