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著『느림과 비움의 미학』/ 발췌
30쪽)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는 노르망디의 옹폴뢰르에서 태어났는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고독을 내면화하며 매사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까탈스런 청소년기를 보냈다.
〃)사티는 파리음악원에서 피아노와 화성학과 솔페지오를 배웠지만 규율의 엄격함을 견뎌내지 못했다.
31쪽) 군대에서 패충열이라는 병을 얻어 제대한 뒤 사티는 몽마르트에 있는 캬바레 '흑묘'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꾸린다. 사티는 나중에 카페 '오베르주 뒤 클루'로 옮겼는데, 여기서 자기보다 네 살 위인 드뷔시를 만나고 오랫동안 교유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음악적 경향은 달랐지만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다. 사티는 자주 점심을 먹으러 드뷔시의 집을 찾아가곤 했다.
〃) 염세주의자이자 우울증 환자였던 사티는 아무도 아파트에 들이지 않고 혼자 가난과 고립의 운명을 벗 삼아 살아갔다. 사티는 "삶은 내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영지 속에 은둔해 살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한다. 창문조차 봉쇄해 외부자의 시선을 차단한 그 아파트에서 사티는 무려 27년간을 은둔하며 살았다.
32) 사티는 장 콕토, 피카소, 르네 클레르 등과 같은 시인, 화가, 영화감독 등과 어울리며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창안해내는 데 몰입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곡들이 「사라방드」「짐노페디」「그노시엔」등이다. 사티는 그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시대를 앞지르며, 뒤에 올 스트라빈스키나 존 케이지의 길을 먼저 열어갔다.
〃) 사티는 59세가 되던 해에 성 요셉 병원에서,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이 고독한 삶을 끝냈다. 에릭 사티는 죽고 난 뒤 ,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현대음악을 연 천재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고,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랬고, 이상이 그랬듯 에릭 사티의 가치는 뒤늦게 재발견 되었던 것이다.
-「상상하라! 변화하라!」에서
*장석주의 장자 읽기『느림과 비움의 미학』/ 2010. 4. 26 <도서출판 푸르메>펴냄
*장석주/ 충남 논산 출생, 1975년『월간문학』으로 등단. 1979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문학평론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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