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이상 문학 연구 - 불과 홍수의 달』신범순/ 발췌

검지 정숙자 2013. 8. 25. 00:28

 

 

    『이상 문학 연구 - 불과 홍수의 달』신범순/ 발췌

 

 

  23쪽)  

  예술과 학문은 사회의 평균치를 넘어서는 사유에서 나온다. 그런데 예술작품과 철학적 사상까지도 패션같은 기준으로 환원하는 해석들이 올바른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가 걸친 의상으로 측정하고 평가한다. 그는 무엇을 입었는가, 그가 타는 차는 무엇인가, 그는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느 집안, 어느 계층의 사람인가 등등이 그의 '의상'이다. 예술과 학문에도 비슷한 경우를 적용할 수 있다. 어떤 유행사조를 따라가는 것은 유행패션을 입는 것과도 같다. 유행패션을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입은 사람이 모두 똑같은 유형의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나 문학과 학문의 사조적 경향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하나의 유행적 의상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꾸밈새일 뿐인 것이다.

    

  494~495쪽

  이상은 '무의미한 1년' 동안의 전매청 공사장에서 그에게 마치 군중처럼, 사방에서 포위하면서 다가오는 듯한 죽음*을 느꼈다. 그는 그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와 자신을 솟구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의 빛을 놓칠 수 없었다. 서대문 의주통 공사장에 있었던 그의 건축관계 일들 때문에 그에게서 추방될 처지에 놓인 시를 그는 기를 쓰고 다시 붙잡으려 했다. 그는 '죽어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을 찾으려고 죽자 하고 애를 썼다고 했다. 자신을 갱생시키기 위해 그가 들어서야 할 창조적 입구에 그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다가선다. 그에게 시란 군중처럼 포위하면서 달려드는 죽음과 대면하는 자리, 그 우울한 관 속에 자신의 은밀한 서판을 하나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유로운 낙서판으로 마련된 관의 벽면이었다. "그의 에스프리는 낙서할 수 있는 비좁은 벽면을 棺桶 속에 설계하는 것을 승인했다."라고 썼다. 

 

 

   *(그는 "피부에 닿을락 접근함을 느끼는"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 "죽음은 그에게 있어서 군중인 양 싶으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죽음에 포위된 채 그는 1년을 무의미하게 보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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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 문학 연구 - 불과 홍수의 달』/ 2013. 4. 29  <도서출판 지식과교양> 펴냄

  *  신범순/ 충남 서천 출생.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 취득

  *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  저서 『바다의 치맛자락』2006,『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 나비』2007,『노래의 상상계』201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