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임재정_섬에서 섬으로의 유목(발췌)/ 초록섬 : 변종태

검지 정숙자 2021. 1. 27. 14:12

 

    초록섬

    

    변종태

 

 

  우도엘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얼른 우도를 주머니에 넣고 와버렸습니다. 지도에서 사라진 우도, 집으로 오는 길은 축축했습니다. 바닷물을 뚝뚝 흘리는 섬, 우도를 잃어버린 바다가 꿈까지 찾아와 철썩거립니다. 우도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칩니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온데간데없습니다. 바다는 더 세게 으르렁거리고, 꿈자리가 사납습니다. 주머니를 뒤집어보니 작은 구멍 하나 나 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디선가 빠뜨린 모양입니다. 그래도 바다는 물러가지 않고 밤새도록 으르렁거립니다. 옆구리를 철썩철썩 후려칩니다. 지도에, 파랗게 출렁이는 바다에 초록의 사인펜으로 가만히 섬을 그려 넣습니다. 금세 파도가 잔잔해집니다.

    -전문-

 

 

  섬에서 섬으로의 유목_ 시집 『목련 봉오리로 쓰다』(2020, 천년의시작)(발췌)_ 임재정/ 시인 

「초록섬」은 인류가 자연의 불가해한 힘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신화나 설화를 통해 내재화했던 토속적 문화를 바탕으로 태어납니다. 시인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듯 상관없이. 그래서 기저에 어른대는 이상한 기시감 따위를 실존의 어떤 자연스러운 내적 반응으로 이해하고 발현할 때, 현상은 가히 세계가 되죠.

  우도도 투발루도 라파누이도 심지어 제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습니다. 불가해한 일들이 벌어졌거나 현재진행형으로 삶을 제한하고 간섭합니다.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닥치면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를 호출하게 합니다. 이 지점은 몹시 거대한 세계의 입구를 숨겨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자꾸 누군가 안에서 시인을 부르죠. 솔깃해져서 들여다보고 싶어지죠. 이게 비단 내게 국한된 홀림일까요. 내일의 그가 거기를 훔쳐보고, 거기에 홀려서 마침내 거기에 속한 채 이름 부르지 못한 인연들을 만나 함께 살게 되면 어떨까요. 내가 이렇게 궁금해해도 될까요. (p. 시 194-195/ 론 19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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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다층』 2020-겨울(88)호 <서평> 에서

  * 임재정/  충남 연기 출생, 2009년 《진주신문》진주가을문예에 「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