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검은 기린/ 김륭

검지 정숙자 2021. 1. 27. 03:09

 

    검은 기린

 

    김륭

 

 

  "이 육체 속에서 우리는 무얼 한단 말인가." 내 옆 침대에

서 누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

 

 

  영혼을 다 써버린 후 검은 연기처럼, 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어떻게 지내는지

  당신이 지새는 밤과 어떻게 섞이는지 보려고

 

  내가 없는 내 죽음도 보일지 몰라 하얀 침대시트를 함께

  말았던 당신의 죽음 또한

 

  그러나 지금은 자는 게 좋겠다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130g 햇반처럼 납작해지는

  벼ㄹ, 하얀, 검게 그을리기 좋은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 또한 돌아왔다고

  나는 다 써버리지 못한 울음으로 가만히

  두 눈을 꺼트릴 것이다

 

  없는 아름다움도 막 팔아먹을 만큼 우린 참

  식물적으로 아팠지, 이런 문장 하나쯤은 서로의 입에

  넣어줄 수 없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듯

  검게 부러져가는 서로의 목을

  베개처럼 껴안고

 

  엄마, 엄마

 

  나는 왜 자꾸 눈사람 머릿속이

  검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시인수첩』 2020년 가을호

 

 

 

  -------------

  * 『다층』 2020-가을호 <2020 올해의 좋은 시>에서

  * 김륭/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