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린
김륭
"이 육체 속에서 우리는 무얼 한단 말인가." 내 옆 침대에
서 누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
영혼을 다 써버린 후 검은 연기처럼, 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어떻게 지내는지
당신이 지새는 밤과 어떻게 섞이는지 보려고
내가 없는 내 죽음도 보일지 몰라 하얀 침대시트를 함께
말았던 당신의 죽음 또한
그러나 지금은 자는 게 좋겠다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130g 햇반처럼 납작해지는
벼ㄹ, 하얀, 검게 그을리기 좋은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 또한 돌아왔다고
나는 다 써버리지 못한 울음으로 가만히
두 눈을 꺼트릴 것이다
없는 아름다움도 막 팔아먹을 만큼 우린 참
식물적으로 아팠지, 이런 문장 하나쯤은 서로의 입에
넣어줄 수 없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듯
검게 부러져가는 서로의 목을
베개처럼 껴안고
엄마, 엄마
나는 왜 자꾸 눈사람 머릿속이
검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시인수첩』 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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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0-가을호 <2020 올해의 좋은 시>에서
* 김륭/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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