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나무가 될 수 있다
정숙자/ 시인
돌, 깨진 날의 모서리// 너무 동그란 것은 가짜다. 너무 매끈한 것은 가짜다. 산책로에서 그런 돌이 눈에 띄면 다가가 건드려본다. 그건 신의 솜씨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쓰다가 버린-버려진 것이다. 너무 다듬은 선, 너무 다듬은 구球. 순수는 그럴 리 없다. 천진은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짧은 하룬들 시달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해변의 돌멩이라 할지라도 고유한 제 색깔 제 각도 제 모서리를 지닌 채 세월을 건너온 육체들이다. 깨졌던 첫날의 모서리야 얼마나 날카로웠겠는가, 아팠겠는가, 그 푸르름이야 또 얼마나 싱싱했겠는가. 하지만 그날의 모서리가 다시 일어설 힘이었던 것이다.
영초동령靈草冬榮// ‘신령스런 풀은 겨울에 영화롭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내 아호 중 하나인 ‘동초’의 모태이기도 하다. 고전 읽기에 열을 올리던 시절, 어느 한학자께서 지어주신 이 이름이 당시에는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겨울 풀’이란 말인가. “신령스러운 풀은 겨울에 영화로워…”라고 일러주셨지만, 허약-문약인 내가 어찌 겨울에 영화로울 수 있으며, 버텨낼 수 있단 말인가. 겨울을 이기기는커녕 초입에 팩 고꾸라지고 말 것 같은 아호. 가당찮은 이 이름 앞에서 나는 돌연 거니채고 말았다. 그건 바로 내가 쥐고 나온 토양과 계절이 겨울이었음을, 학명 자체가 풀뿌리였음을.
가장 아팠던 날의 푸르름// 이 글의 주제인 ‘가장 활기찼던 내 삶의 그 하루’를 찾기 위해 아카식레코드(Akashic Records:우주도서관)까지를 열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여태의 내 삶에서 가장 활기찼던 그 하루는 느닷없이 억장 무너졌던 날, 배우자를 무덤에 가뒀던 날, 내가 우리 가정의 캡틴이 되었던 첫날이 그날이 아니었나 싶다. 슬픔? 그리움? 외로움? 그런 건 화양연화 시절의 추론적 낭만이었다고나 할까. 거기 빠지지 않기 위해 가슴속 깨진 돌의 모서리를 깎아야 했던 날들, 기다림만이 배제된 날들이 어느새 8년을 지나고 있다. 어느 하루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생생한 날-오늘들. ▩
-----------------------
* 시인들이 건네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바람이 분다 · 2』 에서
* 2020. 12. 20. <문학의 집 · 서울/ 비매품> 펴냄
'에세이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 문인/ 정재영 (0) | 2021.01.24 |
---|---|
유비무환/ 곽문연 (0) | 2021.01.24 |
이토록 아름다운 낮은 자 권정생/ 박미경 (0) | 2021.01.02 |
문명기행, 밀림(密林) 속의 마야(발췌)/ 이관용 (0) | 2020.12.16 |
동전 구멍으로 내다본 세상/ 유혜자 (0) | 2020.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