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호병탁_보이지 않는 것들을...(발췌)/ 나는 냉동실을 믿는다 : 박은영

검지 정숙자 2020. 12. 27. 01:38

 

 

    나는 냉동실을 믿는다

 

     박은영

 

 

  한번 들어간 것은 꺼내지 않습니다

 

  검은 덩어리가 칸칸마다 가득입니다 어떤 값의 분량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얼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너무 믿지 말라고 하지만,

 

  멸치는 며칠로 얼었습니다

  오징어는 오직으로 얼었습니다

  생강은 생각으로 얼었습니다

  버터는 바티다로 얼었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나는 오직 여러 종류의 생각으로 버티는 중입니다 온도를 낮춥니다 내용물을 꺼내 해동하면 내용은 물이 되어 발등을 적실 것입니다 냉동실 문을 닫습니다

 

  언젠가는 원하고 필요할 때가 오리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전문-

 

 

    * 히브리서 11장 1절

 

 

  해변의 작은 '몽돌'이 들려주는 천년 세월의 서사/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입증하는 '믿음'(발췌)_호병탁/ 시인, 문학평론가 

  현대의 문학연구가들은 작가의 어조, 즉 '톤tone'에 관심을 갖는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이러니'에 관심을 기울인다. '시치미 떼고 꾸며대기'라는 어원을 가진 아이러니는 지금은 매우 넓은 의미로 해석된다. 축소, 과장, 대조, 불합리에 근거한 농담, 조롱, 조소 등도 포함된다. 모두 일상에서도 사용되는 표현기술로 한 가지 말로 둘 이상의 뜻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다. 근대에는 패러디parody, 펀pun, 역설paradox 등도 모두 아니러니로 간주되고 있다. 있다. 그 중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펀'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펀'은 원래 말이나 문자를 소재로 하는 유희를 의미한다. 이때의 '언어유희'는 일차적으로 '기지wit"의 형식으로 표출되지만 해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중의 의미와 진지한 감정의 유동을 표출하는 데 사용된다. 냉동실에[서 '멸치'는 '며칠' 내 얼고 만다. '오징어'도 '오직' 얼고야 만다. '생강' 또한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얼고 말뿐이다. '버터'도 '버텨'보지만 결국은 언다. 낱말의 '소리'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발생한 ;펀'은 풍부한 기지와 날카로운 어조로 문학의 '심미적 체험'에 커다란 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p. 시 280/ 론 29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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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0-겨울호 <신진 조명/ 작품론> 에서

   * 박은영/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 호병탁/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철산주막』, 평론집 『나비의 궤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