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제비나비 2
성배순
그해 여름 나는, 연두색 유충이었고
당신은 옥색 나비였을 때
햇살의 날개가루를 묻힌 숲이
온통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 꽃 저 꽃의 꽃가루를
묻히고 있었습니다
눈부신 턱시도를 한 채.
나는 연두색 나뭇잎을 갉아 먹었고
당신은 꽃마다 골고루
긴 대롱을 꽂았습니다.
4월에서 8월 내내 나는
눈멀어 당신 날개를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입추를 하루 앞두고 나는
당신을 방에 가두었습니다.
이중 삼중의 자물쇠로.
소설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비밀 방을
찰칵, 열어 보았습니다.
아뿔싸,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방을 통째로 짊어지고
어디로 날아갔을까요?
옥빛의 날개가루도,
당신도, 방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어떤 지옥인가요?
내게는 당신과 내가
한 몸이 되고자 했던
영원한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신 꿈과 내 꿈 사이를 날아다니는
산제비나비 한 마리 있었습니다.
당신 날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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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0-겨울(76)호 <신작> 에서
* 성배순/ 2004년 ⟪경인일보⟫ &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 『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 『세상의 마루에서』 등, 그림책 『세종호수공원』 『250살 시장에서 100살 과일을 찾아라』, 시비책 『세종 충남 시향을 찾아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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