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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우
새 점퍼 사드리러 갔더니
새빨간 오리털을 고르셨다
이건 너무 빨갛지 않느냐며 내가
파랑에 검정이 섞인 두툼한 놈을 집어 드니
그게 아니라며 굳이 빨간 점퍼를 입으셨다
아버지 생전에 처음으로 고르신 빨강을 그 겨울 내내
큰 딸이 사줬다고 뒷집 박 영감님에게 자랑하셨단다
두 할아버지가 막걸리 집에서 한 잔 걸치시고 티격태격하다
술 방울 튀어 옷에 묻으면 얼른 닦아 아끼시더란다.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신 저녁
안주 없이 술 안 파는 그 놈의 집 다신 안 가겠다고 하셨다
술값 안 내는 박 영감님과도 연락 끊겠다고 공연한 어깃장을 놓으셨다
무슨 연유인지 내게 고맙다고도 하셨다
그해 겨울을 못 건너시고 홀연히 꾸리명주나비처럼 날아가 버린 아버지
선암사 문살에 박힌 꽃은 사철 화사한데
영산홍 진분홍은 빈 봄에도 타오르는데
겨울 속에 위리안치된 나는 발이 부르트도록 걷다가 문득
저 멀리서 출렁이는 붉은 부표를 봤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좁고 늙은 등을 봤다
아버지
*문장이 졸하고 오자 낙서 많으니 보나니 눌러보고 답가도 지어주소
이 편지 닿거든
부디 한 번만
-전문-
* 조선 후기 내방가사 '화전가' 마지막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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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0-가을호 <신작시> 에서
* 홍인우/ 2003년 『해동문학』으로 등단, 시집 『티눈처럼 박힌 당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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