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계면(界面)/ 홍인우

검지 정숙자 2020. 12. 13. 23:53

 

 

    界面

 

    홍인우

 

 

  새 점퍼 사드리러 갔더니

  새빨간 오리털을 고르셨다

  이건 너무 빨갛지 않느냐며 내가

  파랑에 검정이 섞인 두툼한 놈을 집어 드니

  그게 아니라며 굳이 빨간 점퍼를 입으셨다

 

  아버지 생전에 처음으로 고르신 빨강을 그 겨울 내내

  큰 딸이 사줬다고 뒷집 박 영감님에게 자랑하셨단다

  두 할아버지가 막걸리 집에서 한 잔 걸치시고 티격태격하다

  술 방울 튀어 옷에 묻으면 얼른 닦아 아끼시더란다.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신 저녁

  안주 없이 술 안 파는 그 놈의 집 다신 안 가겠다고 하셨다

  술값 안 내는 박 영감님과도 연락 끊겠다고 공연한 어깃장을 놓으셨다

  무슨 연유인지 내게 고맙다고도 하셨다

 

  그해 겨울을 못 건너시고 홀연히 꾸리명주나비처럼 날아가 버린 아버지

  선암사 문살에 박힌 꽃은 사철 화사한데

  영산홍 진분홍은 빈 봄에도 타오르는데

  겨울 속에 위리안치된 나는 발이 부르트도록 걷다가 문득

  저 멀리서 출렁이는 붉은 부표를 봤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좁고 늙은 등을 봤다

 

  아버지

  *문장이 졸하고 오자 낙서 많으니 보나니 눌러보고 답가도 지어주소

  이 편지 닿거든

  부디 한 번만

     -전문-

 

   * 조선 후기 내방가사 '화전가' 마지막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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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문예』 2020-가을호 <신작시> 에서

   * 홍인우/ 2003년 『해동문학』으로 등단, 시집 『티눈처럼 박힌 당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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