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다강의 불꽃축제
신미나
강가로 가자고 말했다
나의 진흙 코끼리에게
몰래 외투를 입히고 단화를 신겼다
부스스 마른 흙이 떨어졌다
코끼리는 밀차 손잡이를 꼭 쥐고
천천히 발을 뗐다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다가
더는 걷지 못하겠다는 듯
옆으로 풀썩 누웠다
교각 위에 차량이 길게 늘어섰고
화가 난 사람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그때 나는 말했어야 했다
연잎만큼 넓은
귀를 들추고
당신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전문-
▶오래 머금은 말과 기울기의 감각(발췌)_ 신철규/ 시인
환상과 현실이 묘하게 교차하는 이 시는 현실적 맥락을 대입해서 읽는 순간 그 느낌이 반감된다. 해석적 평설은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우선, 시의 문면을 따라가면서 읽어보자. '나'는 '진흙 코끼리'에게 '불꽃축제'가 열리는 "강가"에 가자고 말한다. 스미다가와 불꽃놀이隅田川花火会는 일본 도쿄의 아사쿠사 근처 스미다가와 강에서 7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연례 불꽃놀이 축제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이 불꽃축제를 보지 못하면 내년에 또 보기 힘들 것이기에 자기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진흙 코끼리'를 무리를 해서라도 데려가려 한다. 얼마 가지도 못한 '진흙 코끼리'는 교각에 이르기 전에 쓰러진다. 차량 통행을 막은 '진흙 코끼리' 때문에 사람들은 화가 나서 경적을 울린다. 자신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진흙 코끼리'에게 더 큰 고통만 안겨준 화자는 "연잎만큼 넓은/ 귀를 들추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다. 이 내용을 현실적인 맥락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진흙 코끼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제대로 버티지도 못할 만큼 노쇠한 몸을 가진 인간이다. 혼자서는 옷을 제대로 걸치지도 못하고 신발도 자신의 힘으로는 신을 수 없다. 그녀를 "몰래" 데리고 나와야 하는 데서 그녀가 누군가의 감시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요양병원에 계시는 그녀의 늙은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밀차 손잡이를 꼭 쥐고 힘겹게 발을 내디뎌 복도까지 나왔지만 걷지도 못하고 그녀는 쓰러진다. 복도에선 한동안 아우성이 벌어지고 화자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제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귀에 대고 어머니에게 어떤 말을 되뇐다.
환상적으로 읽든 현실적인 맥락으로 읽든 이 시의 슬픔과 아름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진흙 코끼리)의 몸이 온전했을 때 좋은 풍경을 함께 즐기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되기에 슬프고, 설렘과 기대, 환희로 가득한 불꽃축제가 결국 불가능한 꿈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 때문에 슬프고,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거동이 불편한 '당신'을 데리고 나온, 어쩌면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서 무거운 몸을 끌고 나온 '당신'의 사랑이 너무 커서 슬프다. '나'는 쓰러져 있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 '당신'을 곤경에 빠트린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상황을 수습하느라 '당신'에게 미안함을 담은 말을 하지도 못한 것이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그것을 가로막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인에게 '오래 머금은 말'로 남을 것이다. (p. 시 83/ 론 7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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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0-가을호 <신작 소시집/ 해설> 에서
* 신미나/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 신철규/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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