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어미 외 1편/ 김지헌

검지 정숙자 2020. 11. 1. 21:41

 

 

    어미 외 1편

 

    김지헌

 

 

  생의 소실점에 서보면

  어미는 배우지 않았어도 중심 잡는 법을 안다

  한 발 잘못 딛는 날이면 

  가계가 몰락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죽을힘 다해 제 새끼 밀어 내놓는

  어미라는 말

 

  큰비가 마을을 쓸어버리고

  버림받은 가축들만 우왕좌왕하던 찰나에도

  어미는 제 육신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다

  지붕 위에서 이틀을 버티고 쌍둥이를 낳은 어미 소

  그 한순간을 위해 우주의 기운까지 모아 버텨냈을 

  어미라는 말

 

  몽골 초원 쳉헤르마을 어디선가 기도문이 들렸다

  지난밤 대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간밤에 새끼 양이 탄생했다고 햇살이 금줄을 걸어놓았다

  새끼 양이 첫걸음 뗄 때까지 어미는 맘을 놓지 못했다

  젖을 떼고 건초를 먹으며 초원을 뛰어놀 때까지

  어미는 눈을 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 영혼이 초원의 가족이 되어

  눈부신 햇살 아래 다시 튼실한 아이를 잉태할 때까지

  어머니는 그렇게 대지의 뿌리가 되어 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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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을 가졌다

 

 

  양파를 썰다가 왼손 중지 첫째 마디를 베었다

  둑이라도 무너진 듯 솟구치는 통증 아래

  붉은 아가미가 입 벌리고 있다

  어떤 힘으로 마그마가 틈을 찾아냈는지

  이미 굳어버린 고집을 흔들어 따뜻하게 대지를 적시는

  붉은 소낙비

 

  심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눈물 흘리는 것으로는 너의 반의반도 적시지 못한다는 듯

  신은 어느 날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여 '버려진 어둠을 헤치고 담장 안에 장미를 심으라' 명령을 내렸다

 

  꽃과 가시를 내장한 채 줄줄이 담장을 넘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전장에 나가는 붉은 군사들에게

  신은 또 명령한다

  꽃이라는 문장으로 세상을 제압해보라

 

  생이라는 협곡을 통과하기 위해선

  가시에 찔리고 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

 

  소낙비가 그치고 붉은 아가미가 닫히고

  넝쿨장미는 줄줄이 담장을 넘으며 너머의 세상을 향해

  온몸을 발기하고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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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심장을 가졌다』에서/ 2020. 10. 20. <현대시학사> 펴냄

  * 김지헌/ 충남 강경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다음 마을로 가는 길』 『황금빛 가창오리 떼』 『회중시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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