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외 1편
김지헌
생의 소실점에 서보면
어미는 배우지 않았어도 중심 잡는 법을 안다
한 발 잘못 딛는 날이면
가계가 몰락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죽을힘 다해 제 새끼 밀어 내놓는
어미라는 말
큰비가 마을을 쓸어버리고
버림받은 가축들만 우왕좌왕하던 찰나에도
어미는 제 육신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다
지붕 위에서 이틀을 버티고 쌍둥이를 낳은 어미 소
그 한순간을 위해 우주의 기운까지 모아 버텨냈을
어미라는 말
몽골 초원 쳉헤르마을 어디선가 기도문이 들렸다
지난밤 대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간밤에 새끼 양이 탄생했다고 햇살이 금줄을 걸어놓았다
새끼 양이 첫걸음 뗄 때까지 어미는 맘을 놓지 못했다
젖을 떼고 건초를 먹으며 초원을 뛰어놀 때까지
어미는 눈을 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 영혼이 초원의 가족이 되어
눈부신 햇살 아래 다시 튼실한 아이를 잉태할 때까지
어머니는 그렇게 대지의 뿌리가 되어 갔다
-전문-
------------------
심장을 가졌다
양파를 썰다가 왼손 중지 첫째 마디를 베었다
둑이라도 무너진 듯 솟구치는 통증 아래
붉은 아가미가 입 벌리고 있다
어떤 힘으로 마그마가 틈을 찾아냈는지
이미 굳어버린 고집을 흔들어 따뜻하게 대지를 적시는
붉은 소낙비
심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눈물 흘리는 것으로는 너의 반의반도 적시지 못한다는 듯
신은 어느 날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여 '버려진 어둠을 헤치고 담장 안에 장미를 심으라' 명령을 내렸다
꽃과 가시를 내장한 채 줄줄이 담장을 넘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전장에 나가는 붉은 군사들에게
신은 또 명령한다
꽃이라는 문장으로 세상을 제압해보라
생이라는 협곡을 통과하기 위해선
가시에 찔리고 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
소낙비가 그치고 붉은 아가미가 닫히고
넝쿨장미는 줄줄이 담장을 넘으며 너머의 세상을 향해
온몸을 발기하고 있다
-전문-
-------------------
* 시집 『심장을 가졌다』에서/ 2020. 10. 20. <현대시학사> 펴냄
* 김지헌/ 충남 강경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다음 마을로 가는 길』 『황금빛 가창오리 떼』 『회중시계』 등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부 식민지/ 박종인 (0) | 2020.11.03 |
|---|---|
| 콜럼버스와 초승달/ 박종인 (0) | 2020.11.03 |
| 뜨거운 발/ 김지헌 (0) | 2020.11.01 |
| 주인공 외 1편/ 서호준 (0) | 2020.11.01 |
| 잭슨 콕 튜토리얼/ 서호준 (0) | 202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