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서호준
내 수업이니까 내가 주인공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웃지 않았다. 이게 웃기나요 그렇게 웃음이 많아 가지고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찻주전자를 털면서 잔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미래, 미래를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난다 그것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사방에서 밀려온다 창문 좀 열지 그래요 오늘 주차한 자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근의 덩치 좋은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가 창문을 열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라고 연 수업이었지 너희가 커서도 나 같은 사람을 기억해 줄까 싶었어 사람들은 창을 내고 창문 만들고 한 참 뒤에는 방충망도 끼웠으니까 그보다 작은 것이 되기 위해 믹서기까지 주문했던 거야 이빨에 낀 찻잎을 혓바닥으로 끄집어내면서 이 표정이 주는 불쾌감을 나중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것에 대해서 질문 없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간식 따위가 책상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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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산책
다시는 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자와 마주 앉아 있다
젓가락을 움직이면서
웬 놈이 사람들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내고
수챗구멍에 오줌을 누고
한번 쳐다보니 계속 쳐다보게 되더군요
나는 마주친 그를 지나쳐 간다
배달 음식 전단이 손에 쥐어져 있고
축축하다
더 들어보세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을 썼는데 『모든 것의 역사』로 번역되어 있었고
넘기면 찢어지는 재질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을
건성으로 대답하면 죽여 버릴 거야
그러나 여태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는 물에 타 먹는 술을 꺼내 온다
가게 문을 닫아버리고는
몇몇 장면을 삭제하고 티브이에서는 최루탄 연기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고 있다
당신 뒷모습이 슬픈 건 지금 제가 슬프기 때문이겠죠
쥐면 깨지는 재질의 술병이 끊임없이 서빙되고
정확한 묘사가 완전한 망각을 가져오리라
술잔에는 그런 문구가 적혀 있다
담담하게 미치고 싶었습니다
미친 사람은 원래 담담합니다만
그는 분한 표정으로 철문을 열었고
깨진 술병, 눌어붙은 신문지, 스프링 단위로 해체된 침대
석상 하나가 배회한다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여러분, 내가 압니까?
내가 생각하는 소리를 들은 적 있습니까?
타일마다 돌부리가 박혀 있다
생각해 보세요, 모든 사물이 이름을 갖는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석상의 입이 와드득 열린다
입 모양을 바꿔 가면서
풍선껌을 불면서
왜곡된 형상을
터트리면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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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소규모 팬클럽』에서/ 2020. 9. 28. <파란> 펴냄
* 서호준/ 1986년 출생, 문학 플랫폼 <던전>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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