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콜럼버스와 초승달/ 박종인

검지 정숙자 2020. 11. 3. 01:15

 

 

    콜럼버스와 초승달

        스토킹

 

    박종인

 

 

  그가 발견한 땅이 식민지가 되길 원했어 금과 향료의 나라 동양을 그리는 그의 가슴엔 검은 대서양만이 파도치고 있었지 땅이 보이지 않으면 내 머리를 자르시오 기꺼이 목을 내놓았지 육지다 외치는 순간 목은 살아나고 역사의 새 새벽이 오고 있었지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넌 그의 역사 속에 종일 파도가 넘실거리고 저어가던 뱃머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지 창밖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어 달을 타려고 이마에 수평선을 만들었지 초승달은 수평선을 그어놓았어 바다가 요동하고 마스트가 심하게 펄럭이는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그는 정수리에 닻을 내렸어

 

  신대륙을 여왕께 바치는 순간

  새 역사의 페이지마다

  가혹한 식민지로 물들고 있었어

     -전문-  

 

 

  해설> 한 문장: 발견과 개척지 소유에 관한 역사적 혹은 거시적인 관점을 인간의 관계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측면이 이 시편에는 도드라진다. 대항해의 역사와 그 신대륙의 발견과 소유 및 개척에 관해 새로운 관계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는 이 시편은, 콜럼버스의 선언적인 언술이 미지의 영역을 이미 확신하고 소유하고 모종의 억압적 기제로 작용하는 측면을 예리하게 보아내고 있다. 부제로 붙은 "스토킹"은 그런 측면에서 존재의 혹은 사물의 발견이라는 것은 소유나 일방적인 간섭의 영역이 아니라 창의적인 소통의 관계 대상이라는 것을 반대급부로 암시하기에 이른다. 신대륙의 새벽을 향한 호언장담은 '내 머리를 자르시오 기꺼이 목을 내놓'는 결단과 용기를 높이 살 수도 있지만 그 결행과 만용의 뒤끝에는 일방적인 소유와 탈취, 억압과 약탈의 '가혹한 식민지'가 예정돼 있다는 흉포함이 도사린다. 이것이 비록 대항해 시대의 역사에만 한정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시인의 눈길인 것 같다. 소유가 아닌 상생(cohabitation)의 관계적 모색을 회피한 야만적 탈취의 사냥 행각의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실적인 상황으로 횡행할 수 있다는 화자의 시각이 갈마들어 있다. (p. 시 62/ 론 124) (유종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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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연극무대』에서/ 2020. 9. 16. <포지션> 펴냄

   * 박종인/ 전북 무주 출생, 2010년 『애지』로 등단, 시집 『미술관에서 애인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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