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현존'이라는 거북이/ 김산

검지 정숙자 2020. 10. 8. 02:42

 

 

    '현존'이라는 거북이

 

    김산

 

 

  거북이와 같이 지낸 지 만 28개월이 넘었다. 아프리카 출신인 이 녀석의 이름은 '현존'이다. 그야말로 지금의 나이고 나를 나답게 하는 나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스승인 나의 '현존'은 큰 병이 걸리지 않으면 80년은 족히 산다고 알려져 있다. 중지 손가락만 할 때부터 내 곁에 있던 거북이는 이제는 내 손바닥으로는 덮지 못할 만큼 자라 조금 더 있으면 내 손이 두 뼘 길이보다 더 자랄 것이다. 치커리와 애호박과 청경채 등의 채식만 하는 이 친구는 하루에 20시간은 족히 잠을 자는 잠꾸러기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크게 아프거나 식사를 거르지 않아서 대견한 이 거북이는 이제는 배가 고프면 사육장 우리문을 앞발로 두드리는 건강한 아성체가 되었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신진대사가 매우 느린 이 육지거북이는 보름 동안 밥을 주지 않아도 괜찮아서 온도 조절만 되면 긴 여행을 다녀와도 되는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사흘 이상 집을 비운 적이 없다. '현존'이가 두드리는 유리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이 첫째고, 내가 있는 그곳이 나의 집이므로 밖에 있으면 안정이 되지 않고 그리워지는 까닭이 둘째다. 이제는 나의 손길이 익숙해졌는지 핸들링을 하며 발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움츠러들지 않고 나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정작,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거북이와 함께 사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가끔 물어온다. "거북이가 아주 오래 산다는데 나중에 네가 죽으면 거북이는 어떻게 할 거냐고? 유언이라도 남겨야 되지 않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수습을 해서 키우든, 맡기든, 하지 않을까?다 자기 삶인데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하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평소에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각별한 지인에게 미리 부탁하거나 처음 입양했던 파충류 가게에 다시 보내거나 시설이 완비된 동물원에 보내 일생을 살게 하거나 아니면 인적 드문 야생의 숲에 방생을 하거나 등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거북이는 몇 달도 살지 못할 것이다. 아프리카 출신이기에 늘 30도를 넘나드는 더운 곳에서만 생존하는 특징을 가지기도 했고 거북이가 주식으로 삼을 채소들을 숲에서 직접 찾아서 먹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육지거북이가 가진 취약점이기도 하지만 특히 '현존'은 만사가 태평해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유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거북이와 나를 주종관계로 생각지 않으며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의 거울이 되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홀로 사는 나에게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큰 위안과 동시에 책임감을 갖게 한다. 더군다나 이 녀석은 잠이 많고 긴 목을 추켜세우고 멍때리기를 좋아하며 좀처럼 말이 없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특화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거북이가 나를 닮아가는 것인지 내가 거북이를 닮아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같은 생을 사는 것처럼 무척 닮아 있다. 그의 이름은 '현존'이다. 지금의 나이면서 나를 있게 하는 이 친구를 나는 사랑한다. (p.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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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사람』 2020-가을호 <시인의 생활도감> 에서

   * 김산/ 2007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키키』 『치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