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아직 살아있다는 구조
요청의 신호
현택훈/ 시인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시인 기형도의 시 「비가2 -붉은 달」의 부분이다. 기형도는 마치 유언처럼 생존자들에게 살아 있으라, 라는 구조 요청 같은 전언을 남겼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는 내가 죽더라도 당신은 살아서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증명해달라는 절규다. 코로나19 시대에 누구든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무증상이라는 말도 무섭게 들렸다. 무증상자에 의해 감염될 수 있다는 건 자신도 모르게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해 말한다. 전염병이 곧 부조리인 것. 우리는 거의 모두 부조리에 감염되어 있다.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한다. 외로운 생존자가 되더라도 우리는 살아있어야 한다. 페스트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을 앗아갔다. 그런데 이 페스트는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한다.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바이러스는 늘 우리와 함께 해왔다.
전염병으로 인해 도서관이 폐쇄되자 도서관은 문을 열어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공감한다. 마스크를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피로한 사람들에게 책이 위로가 될 수 있다. 격리만이 해결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시가 마음의 마스크가 될 수 있을까. 문학이 방역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시 역시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년에 중학교에 특강을 갔었다. 한의사, 디자이너, 마술사, 요리사, 소방관 등의 여러 직업의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시인으로서 갔다. 진로에 대해서 말할 때 소득은 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시보다 소설, 시나리오, 스토리텔링 등에 대해서 더 많은 부분을 말했다. 마지막에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직업을 갖든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를 읽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그 말이 시인의 삶을 억지로 포장하는 것 같아 쓸쓸했다.
전염병이 창궐하자 진로 특강마저도 끊겼다. 가난한 시인은 그런 특강을 통해 받는 강사료가 생계유지의 수단이다. 시와 연관 지어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는 일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자 생활에 큰 문제가 생겼다. 주위의 공연 예술가들도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염병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에 대한 생각도 많이 줄어들었다. 일단 생활비 마련이 우선이었다.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을 받았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원고료가 있기에 시인의 업무라 생각한다.
나는 직업윤리는 잘 모르지만, 진로 특강을 준비하면서 직업으로써의 시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는 우선 자신을 위해 꿈을 이루려고 한다. 이기적인 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되면 본인 의사는 상관없이 남을 위해 일하게 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소방관은 화재 진압을 해 피해 입은 사람을 돕는다. 직업이 있다는 건 남을 위한 일을 한다는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직업 행위가 곧 이타적 삶이 된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시를 써서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시는 이타적 시가 된다.
나는 중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학생, 여러분 절대 시 쓰지 마세요. 앞길이 구만리인데 시는 절대 쓰지 마세요."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지만 나는 목적을 달성했다 여기며 뿌듯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누군가 내게 지금의 나와 같은 말을 해줬다면 나는 시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그래도 문학의 길을 갔을 것이다. 돈을 바랐다면 진즉에 시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의 직업윤리는 시를 읽고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공감을 받을 거라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시 쓰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크로나19 시대가 되자 이 생각을 종종 한다. 초등학교 방과 후 독서논술 강사를 하는 일상이 사라졌다. 일상의 소중함이 생계유지와 직결된다는 걸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엔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 도서관 글쓰기 강사 등의 일을 하면서 연명 중이다. 바이러스가 퍼지자 수업들이 미루어지거나 사라졌다. 지난 7월이 되어서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면 진정국면에 들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펜데믹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도 들었다.
바이러스도 진화를 한다. 아포칼립스의 단계로 가는 지구에서 바이러스 시대는 숙명이다. 생활방역이 시작되었다. 뉴노멀로 언택트 시대가 되었다. 최근에 본 영화 <#살아있다>(조일형 감독, 2020)는 SNS 해시태그를 통해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디지털 컨택트로 소통하는 세상이 된 것. 영화에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준우는 하루하루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디지털로 증명한다. 철저한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교 시간강사 일을 하는 문우가 몇 있는데,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느라 무척 낯설다는 소회를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는데 내게도 비대면 수업이 주어졌다. 제주에 있는 동녘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비대면으로 글쓰기 강좌를 열겠다는 것. 강의가 수입원이기에 거절하기 못했다. '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준비했다. 일단 줌 사용법부터 익혔다. 유튜브에 들어가 줌 사용법에 관한 동영상을 시청했다. 유튜브 강사들의 강의법도 눈여겨봤다.
줌 사용법을 시험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각각 다른 방에서 줌으로 대화를 나누어봤다. 노트북 캠은 화질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문에서 카카오톡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는 어느 대학교의 교수에 대한 기사를 보며 앞으로 동영상 편집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시작된 비대면 수업. 동녘도서관 사서 역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걱정스러워했다. 첫날엔 혼자 동녘도서관에 가서 교실에 앉아 수업을 했다. 모노드라마를 찍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수업 시간엔 집에서 줌을 연결했다. 영상 공유를 하는데 소리가 나지 않아 애먹었다. 비대면 시대에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가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이제 시인도 동영상 제작법을 익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운이 좋은 경우도 있었다. 전염병이 확산되기 직전 신청한 초등학교 독서논술 강사직에서 떨어졌다. 그러다 몇 개월 지났는데 처음 선정된 강사가 기다리다 지쳐 다른 일을 찾아버려서 다음 순위로 내게 기회가 왔다.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내 자신이 의뭉스럽게 느껴졌다. 마스크를 낀 채 만나는 초등학생들의 눈빛을 보며 수업을 진행한다. 마스크를 낀 채 말하니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숨이 막혀 답답하다. 하지만 방법이 있는가. 마스크의 시간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여러 명의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라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여러 관공서나 병원 등도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을 지키는 중이다. 버스를 탈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승차할 수 없다. 마스크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시 역시 나 혼자 쓰는 것이지만, 독자에게 들려주는 문학 작품이다. 마스크의 시간에 시 쓰기는 생활과 관련지어 큰 영향을 준다. 생계유지를 위한 일들이 시 창작에 영향을 준다.
중학교 진로 특강을 마치고 시 한 편을 썼다. 제목이 '직업 특강'이다. 졸시 「직업 특강」은 자조의 풍자가 들어갔다. "혹시나 시에 관심 있어도/ 시 읽기만 하세요/ 시인은 절대 되지 마세요/ 시 절대 쓰지 마세요/ 평균 연봉 십이만 원/ 시 한 편에 삼만 원, 일 년에 두 번/ 그래도 많이 발표한 거죠// 독자는 있을까말까/ 혼자 써서 혼자 읽죠/ 쓰고 또 쓰죠 밤새 시를/ 쓰고 또 쓰죠 아침에 찢죠// 새가 울면 운다고 쓰고. 비 오는데 라디오 슬프고/ 떠난 님 생각나 쓰고/ 어디 시 안 쓰고 배길 수 있나요// 투잡, 쓰리잡 해야 살죠/ 뭐 하나 쉬운 게 정말 없네요// 구름이 집 쪽으로 흘러간다고 쓰고/ 보도블록 사이로 꽃이 폈다 쓰고// 날 저물어 해 질 때/ 바다이불을 끌어올린다고 쓰고/ 시 쓰는 사람, 근사하긴 하죠/ 그래도 시인은 되지 마세요// 중학생 여러분, 앞길이 구만리/ 절대 시 쓰지 마세요" 강의가 곧 생계유지인 시인은 시런 시를 쓰며 자위한다.
요즘은 로또 당첨을 꿈꾸듯 유튜브 스타를 꿈꾼다고 한다. 나 역시 유튜버가 되었다. 하지만 구독자나 조회수가 아주 적다. 내가 쓴 시 「직업 특강」이 재밌다고 제주에서 활동하는 가수 박순동이 노래로 만들어줬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유튜브에서 '직업 특강 현택훈'으로 검색해서 구독과 좋아요 누르기 부탁드린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긴급생활안전자금이 나왔다. 나는 그 돈으로 쌀을 샀다. 가깝게 지내는 예술가들이 배고픔을 호소한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예술 공동체에 균열이 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가 우리에게 펼쳐질 수 있다면, 그 시가 노래가 되고,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를 쓸 수 있다. 예전에 정정일 시인은 "세상의 모든 시집은 다 유고시집이지요."라고 말했지만, '#살아있다'는 해시태그를 붙이면서 시를 써야 한다. 유고시집을 내기 전까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야 한다.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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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0-가을호 <기획특집/ 코로나19시대와 시 쓰기>에서
* 현택훈/ 제주 출생,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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