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詩는 운명과 함께
나의 생生은 기적과 함께
정숙자
prologue
1988년 12월에 등단했으니 내 문랍文臘은 올해로 32년이 되었나 보다. ‘나의 생生’을 쓰기에는 좀 이르지 않나 싶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더 파고들자면 세월이 아니라, 그 세월에 짱짱히 값할 만한 작품을 빚어냈느냐, 하는 생각이 실로 큰 문제로 다가온다. 무엇으로서 나의 생을 말할 것이며, 과연 무엇으로서 나의 시를 피력할 것인가. 그런데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흘러들었다. “편집자의 눈은 빗나가지 않는다. 청탁이란 가능한 자에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들었던 정의가 주눅 든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1. 운명의 문
대개 ‘운명’이라는 말에는 행복보다는 불운의 이미지가 내재 되기 마련이다. 무겁고 우울한 이 어휘를 왜 굳이 제목으로 골랐을까, 궁금히 여길 독자의 시선도 헤아려 봤다. 그러나 글이란, 더욱이 픽션을 전제로 한 내용이 아닐 때는 읽는 이나 쓰는 자가 좀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담아내야 서 푼의 값이라도 지니지 않을까, 하고 어렵사리 결론을 내렸다. 나의 詩가 운명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꺼내지 않고서는 인생 전체를 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詩든 인생이든 출발조차 되지 않는다. 까닭인즉, 아기 때 고열에 시달리며 청력을 놓치게 됐기 때문이다.
아주 못 듣는 건 아니었지만 웬만큼 큰 소리라야 들을 수 있었다. 자연히 그와 비례하여 뇌의 발육도 원활하지 못했으리라. 성인이 된 뒤에야 중이염 치료과정에서 청력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현재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 농촌의 열악한 환경은 아기의 고막이 녹아버릴 정도로 열이 올라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증거다. 교통도 의료도 거의 원시사회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할 수 있는 한의 정성을 다 기울여 봤으나 낫지 않는 아기를 윗목에 밀어 놨었다니 나는 그때 이미 준령 하나를 홀로 넘은 셈이다. 그때의 병명은 마마였다고 한다.
나는 내가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줄곧 허약했으며 공부도 못했고, 또래 친구들과 뛰노는 짓도 재미가 없어 한 축에 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모두 청력부실에 기인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신은 이쪽 문을 닫으면 저쪽 문을 열어둔다, 하지 않았던가. 귀에 어둠을 부여한 대신 눈만큼은 활짝 열어준 자비였다. 한글을 깨치자마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열 살 안쪽에 나만의 ‘운명의 문’을 발견했고 출입했던 것이다. 책 표지야말로 ‘빛의 문’이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내 문학은 그렇게 귀(耳)로부터 제안되었던 셈이다.
2. 기적의 길
소녀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안데르센 동화가 아닌 세계문학에 정신을 팔았다. 익히 알려진 문호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도스또옙스끼,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 한두 권이 아닌 한 질씩을 차례대로 읽어나갔다. 페이지가 두꺼울수록 도전의식을 갖고 배불리 섭취했다. 물론 제도권의 교육과정을 망설임 없이 작파하고서! 그 당시엔 그런 결단이 철없는 용기인 줄도 몰랐고, 다만 공부(국어 외)는 체질에 맞지 않았을뿐더러 전혀 즐겁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었다. 미래를 내다볼 수도 없는 나이였고. 그러나 그 막무가내 외골수 속에 기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나를 평생 잠 못 들게 할 한마디와 마주쳤다. “교육을 받지 못할진대 태어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 무식은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에.”-플라톤. 그로부터 나는 안이한 독서에서 벗어나 체계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단독자의 체계라는 것이 ‘나름 체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 ‘나름 체계’나마 충실을 기하려 했다. 패턴을 짠 것이었다. 그때 실천한 나의 독서 패턴은 세계문학, 세계사상, 동양 경전, 우리의 고전 등등을 돌아가며 읽는 것이었다. 단 시집은 항상 읽기를 선택! 그때 그 책들이 빌려준 지혜야말로 기적의 길이었다.
나의 독서 스타일은 팍팍 읽어내지 않고 야금야금 읽는 편이다. 밤을 새운다든지, 책을 읽기 위해 두문불출한다든지 그런 법은 없다. 단 몇 페이지라도 꾸준히- 끊임없이- 읽는다. 읽은 다음에는 반드시 노트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시간이 없어 노트를 기다리는 책이 밀려 있다. 안타까우나 별수 없는 일.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을 나는 우인수독오거서愚人須讀五車書로 바꿔 써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둘러보니 집안에 책만 가득하다.
3. 운명으로부터의 빚
나는 운명으로부터 무엇을 꾸었으며 갚지 못하고 태어난 것일까? 다섯 살도 되기 이전에, 이 세상까지 쫓아와 청력이라도 가져간 걸 보면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있었을 법하다. 일생에 얹힌 고통과 불편으로라도 대신 때워라, 그런 셈이 아니었을까? 여하튼 나는 뿌려진 자리에서 움텄고, 그 토양에서 최선의 영양을 흡수하고자 했다. 개구리에게 날개가 없더라도 새보다 잘 뛸 수 있는 신체가 주어졌듯이, 나에게는 부실한 귀 대신 멀쩡한 눈이 있지 않았던가. 꼬맹이가 무슨 이치를 저울질했을까만 눈의 활용도를 독서에 기울여 최적화했던 것이다.
나의 최초의, 독서의 매혹은 방정환 선생의 번안 동화집 『사랑의 선물』이었다. 백 독은 족히 넘었으리라. 오빠의 책상에 놓여 있던 책이었는데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지 겉장은 물론 속지마저 나달나달 해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의 논리에 맞춰지는 게 동화이지만, 열 살 안쪽의 나에게는 징벌과 행운의 정확한 부여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내 작은 심장과 눈동자 안에서 신뢰에 찬 희로애락이 빛을 발했다. 아마도 그때 평생토록 나를 지켜줄 도덕 관념과 윤리의식, 선-의지 등이 마련되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나의 책 읽기는 생활이었다. 외적인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고,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열악한 하루하루를 충족시켜 주었다. 여행도 그만은 못했으며 소소한 장신구나 새 옷을 샀더라도, 산해진미를 먹었을지라도 양서 한 권을 읽은 데 비하면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다음 끼니에 먹을 양식이 없으면 미리 배고프듯이, 다음에 읽을 책 한 권이 머리맡에 없으면 그 허전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뒤이어 읽을 책이 으레 기다리고 있었고, 요즘엔 미처 읽어 낼 시간이 없어 몇 권씩 쌓여간다.
4. 기적으로부터의 빛
바닷물은 끝까지 견디고, 겪고, 살아서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 넋이다. 저 높은 산정의 물에서부터 들녘이나 어느 추녀의 낙숫물에 이르기까지 혹은 썩고, 혹은 마르며, 혹은 찢겼을지라도, 누군가의 목을 축이고 배설되었을지라도 흐르기를 포기하지 않고 흘러 흘러 바다에 닿았다는 그 정신이 물의 생명이자 위대함이다. 바다가 넓기 때문이기보다, 깊기 때문이기보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의 순결한 집결이 저리 둥글고 새하얀 레이스를 일으키는 게 아닐까. 무저항의 전진, 무소유의 여유, 자연에의 순응이 저리 훈훈하고 찬란한 지상의 언어가 된 게 아닐까.
누군가는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단번에 바다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한 발 가까운 강물에 빗방울로 떨어져 쉽사리 파도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인간 이성과 경계 밖의 일. 다만 주어진 환경과 역량 안에서 근면/성실을 벗 삼다 보면 어느 날 꿈결인 듯 행운의 여신이 등불을 높이 들어 안내하리라. 직간접 경험을 소급해 볼 때 이는 허사가 아니다. 혜성처럼 나타나 문명을 드날리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작품은 고사하고 이름마저 떠오르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봐왔으니 말이다.
자칫 방심하기 쉬운 것이 급한 마음이다. 몇 년 사이에 우뚝 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이나, 눈에 번쩍 띌 만한 작품을 당장 발표해야만 될성싶은 그 열정이 실족을 부를 수 있다는 점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작품이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전 생애를 걸어도 건질까 말까 한 영적 산물인 것이다. 그것은 테크닉(technic)만으로는 얻을 수 없고, 의미만으로도 순도 높은 결정結晶을 굽지 못한다. 성찰과 인식을 통해 기발한 발상이 왔다 하더라도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획득하려면 정진에 정진을 곱해야 가능한 일이다.
epilogue
등단 연도는 그렇다 치고, 내가 글을 읽고 시를 사랑한 햇수로는 거의 한글 이전의 나이만 빼면 고스란히 합해도 되리라 본다. 등단 이전의 습작만으로도 2천여 편이었고(그게 무슨 시였으랴만!), 삶의 어느 길목에서 시 외의 꿈을 꾸어본 적도 없다. 비록 학교를 통한 스승이나 선후배 동문 등의 지연은 없었지만, 때때로 기적의 손이 사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러구러 내년이면 내 나이 칠십. 그렇지만 어떠한가. 이렇게 조촐히 늙어 열 살 아이 때처럼 어두운 귀와 책과 함께 살고 있으니, 그런대로 생의 한 바퀴를 詩와 함께 돌아왔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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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0-9 가을(5)호 <나의 시詩 나의 생生>에서
* 정숙자/ 전북 김제 출생(1952), 부용초등학교 졸업(1964), 이리여중 졸업(1967),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 수료(1991),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열매보다 강한 잎』 등, 산문집 『밝은음자리표』 『행복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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