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던 자리
김현지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다 있소···, 다이소,
십수 년간 수많은 책으로 가득 차 있던
10.00평 넓은 매장 골드북이 떠나간 자리
수백 가지 생활용품 빽빽이 들어 차 있는 다이소
한동안 맘이 쓰렸다
이렇게 하나씩 마음 쉼터가 사라져 가는구나
빌딩 숲에 초목 같던 책들이 경제 논리에 조용히 밀려나는구나
여기쯤엔 시집 코너가 있었지
이쯤엔 잉크 냄새 선명한 신간들이 죽죽 누워 있었고 이쪽엔
조무래기 아이들이 엄마 손 잡고 와서 책을 읽고 책으로 놀던
널찍한 쉼터, 건너편엔 인문 지리 종교 철학 고전 등···
초록 양식들 없는 것 없이 다 있었는데
온갖 꾸미기 매무새 걸이 아기자기 매달리고
주방용품 목욕용품 꽉꽉 들어찬, 책이 있던 자리,
책 속의 행간을 건너다니던 달콤한 목마름
다 있소 다이소 외침만 쟁쟁한
모든 것 다 있으나 아무것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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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소금』 2020-가을호 <신작시 ②> 에서
* 김현지/ 1988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연어일기』 『포아풀을 위하여』 『그늘 한 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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