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동거 외 1편/ 이화은

검지 정숙자 2020. 8. 24. 18:13

 

 

    동거 외 1편

 

    이화은

 

 

  뚝방길에 납작하게 죽은 새의 붉은 부리를 보면서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친구의 붉은 손톱을 생각한다

  방금 손질을 끝낸 듯 장미보다 더 장미 같던,

 

  거짓말처럼 손톱은 새빨갛게 살아있었다

  죽음이 손톱에까지 전달되지 않았던 것일까

  붉은 색이 생과 사의 거래를 완강하게 막고 있었는지도 몰라

 

  저 새는 붉은 부리로 간절히 사랑을 구하였을 것이다

  구애의 용도가 아니었다면 죽은 후에도 저렇듯 붉을 이유가 없다

 

  자기가 죽은 줄 모르고 슬쩍

  내 잠의 귀퉁이를 잡아당기는 이들이 있다

  모른 척 자는 척

  내가 잠에서 깬 줄 알면 그들이 무안할까 봐 가 버릴까 봐

 

  죽은 자들이 꿈에 보이는 날은 종일 심란한데

  그렇다고 저들의 방문을 막을 기도문을 외우거나

  부적을 써 붙이진 않는다

  저들이 없는 내 삶은 기울어진 시소 같을 것이다

 

  죽은 자들이 살던 자리는 이미 산 자들로 메꿀 수는 없다

 

  저들이 맘껏 드나들도록 내 몸의 절반을 비워놓고

  살아 있는 절반의 생이 팽팽하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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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신화

 

 

  초록이 고요하다 

  초록이 출렁인다

  유월 새벽 산책길

  바짓단을 접어 올려도 아랫도리가 온통 초록에 젖는다

  쑥 냄새가 유난하다

  마늘만 있으면 하맘 사람이라도 되겠다

  아 나는 사람이 싫은데

  호랑이로 곰으로 살고 싶은데

  마늘 없이 쑥 냄새로만 포식했으니 반인반수쯤인가

  실없는 생각을 굴리다가

  온몸이 초록으로 분기탱천한 풀벌레를 밟을 뻔했다

  유월의 심장을 밟을 뻔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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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소금』 2020-가을호 <신작시 ①> 에서

  * 이화은/ 1991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절정을 복사하다』 『미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