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민석_바흐친으로 시 읽기(발췌)/ 기타 노동자 : 임경묵

검지 정숙자 2020. 8. 14. 00:53

 

 

    기타 노동자

 

    임경묵

 

 

  아빠는 기타리스트가 아니란다

  기타리스트가 아니라서 바리케이드로 막힌 공장 철문 앞, 무성한 닭의장풀 속을 서성이는 젖은 두 발이 되었단다

 

  기타가 없으면 노동도 없고

  노동이 없으면 음악도 없지

 

  엄마, 그깟 다 닳은 비누를 앙파망에 담아 뭐하게

 

  그새 많이 컸구나

 

  아빠의 푸른 작업복을 빨아야 한단다

  지금은 비누 조각을 똘똘 뭉쳐 아빠의 푸른 작업복에 새하얀 거품을 조율할 시간

 

  음악이 없으면 노동도 없고

  노동이 없으면 기타도 없지

 

  아빠가 기타리스트가 아니면 난 뭐야

 

  그새 많이 컸구나

 

  너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동네 두 바퀴······

  기타리스트가 아니라서 아빠는 지금 외발자전거처럼 쓸쓸하단다 푸른 작업복이 마를 때까지 너도 같이 돌자

  동네 세 바퀴, 동네 네 바퀴······

 

  아빠, 늘어진 기타 줄이 자꾸 발에 걸려요

 

  그새 많이 컸구나

     -전문-

 

 

  ▶ 비평의 실제 / 4. 바흐친으로 시 읽기(발췌)_ 오민석/ 시인, 문학평론가  

  이 시의 각주에 따르면 "콜트콜텍에서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 127명은 2007년 정리해고된 후, 아직까지 기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 시는 다성성의 연결고리들을 끊음으로서 세계를 '단성화(單聲化 monopolization)'하는 자본의 시스템을 잘 보여준다. "기타가 없으면 노동도 없고/ 노동이 없으면 음악도 없지", "음악이 없으면 노동도 없고/ 노동이 없으면 기타도 없지"로 반복되는 유사 구절들은, 세계의 모든 부분들이 '공존'과 '상호작용'의 전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바흐친의 "다성성" 개념은 당위가 아니라 존재의 속성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한마디로 말해, 다성적이지 않은 담론, 다성적이지 않은 세계는 없다. 지배 계급이 '다강세성'을 '단일강세화' 하듯이, 자본은 다성적인 세계의 길을 '외길'로 만든다. 그 외길은 경쟁에서의 승리와 이윤 추구라는 길이다. "기타"와 "노동"과 "음악"은 세계의 다성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며, 이것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이 세계의 다성성을 만든다. 그러나 자본이 노동을 죽임에 의해 이들 사이의 연견결고리가 끊어질 때, 세계의 다성성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 이 시에서 "비누 조각을 똘똘 뭉"치는 노동자 부인의 행위나,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동네 두 바퀴" 운운하는 대목들은 모두 그 끊어진 연결선들을 복구하여 세계의 다성성을 살리려는 한 노동자 가족의 소망을 담고 있다. "지금은" "아빠의 푸른 작업복에 새하얀 거품을 조율할 시간"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조율"이라는 기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조율'은 다양한 소리들이 합쳐져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는 화성학和聲學의 기본 법칙이다. 심포니(symphony)는 오로지 다양한 악기들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 세계의 단절된 '부분'들은 "외발자전거처럼" 쓸모가 없어진다. 이 시는 다성성이 파괴된 자본 중심의 세계에서 쓸모가 사라진 주체들의 "쓸쓸한" 이야기이다. (p. 시 257-258/ 론 258-259)

 

 ------------------- 
 * 『시인동네』 2020-8월(통권 88/ 종간)호 <비평의 실제/ 4. 바흐친으로 시 읽기 >에서 

 * 오민석/ 1990년 『한길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1993년《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굿모닝 에브리원』『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등, 문학이론서『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저항의 방식: 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송해 평전『나는 딴따라다』『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집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에세이집『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등, 現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