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실재와 실제/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0. 8. 9. 23:49

 

 

    실재와 실제

 

    정숙자

 

 

  알 수 없는 어느 공간에서, 나는

  어둠과 두려움에 새파라니 떨고 있었지

 

  왜 여기 홀로 있으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그 무엇도 모르는 채 온몸 가득 얼음을 채우고- 바람 휘감고- 갈라지고 있었지.

 

  그런, 한순간

 

  어떤 이가 내 몸을 감싸 안았어

  나는 곧바로 녹아버렸지

  부드럽고 따뜻하고 조용한 그 품속에서

  얼음은 다시- 반짝- 숨이 돌았고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았으며 무섭지도 않던 거기서

 

  문득

  깨어났을 때

  나는 몽땅 벌거숭이였지만

  점차 알게 되었지

 

  알 수 없는 어느 은하에서 나를 구해준 그분께서는

  이곳 이 마당에서까지

  온갖 것 내어주고 덮어주시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시는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셨어

 

  그분이 주신 모든 것 당연히 받을 걸 받은 줄로만 알고 희었네

 

  어느 성운에선가 미아였던 나, 안아주신 그 하나만으로도 하늘이었는데이 힘든 세상에 왜 날 낳으셨을까? 그런 신음까지를 얼렸던 적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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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8월호 <이달의 시인/ 신작시>에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뿌리 깊은 달』 등,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 <질마재문학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