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이야기
류미야
산사 입구 그 묵집, 개 한 마리 있었지요
어찌 잘 따르는지 사람들 예뻐했죠 주인이 지은 이름도 좋은 개, 호구好狗였어요 머릴 쓰다듬으면 꼬리가 뱅뱅 돌고 먼 데서도 주인을 펄쩍펄쩍 맞는 품이 어디 먼 파병이나 다녀온 듯싶었죠 하룻강아지 때부터 사람 손 탄 호구, 사람을 밥처럼 하늘처럼 믿는 호구, 참말로 니 호구대이, 놀리기나 했지요··· 잊었던 그 산사 한참 뒤 찾았을 때 어쩐지 다릴 끄는 호구를 보았어요 어느 봄 꽃잎 터지먼 밤 일이었다나 봐요 먼 도시서 원정 온 개 도둑 일당들이 순하디순한 호구의 목줄을 홀쳐맸다죠 그렇게 한참 끌려가다 도망쳐 왔다지요··· 발톱이 으깨지고 목살 찢기면서도 한사코 돌아왔다죠 사랑하는 제집으로··· 그날 이후 밤이 되면 시름시름 앓던 호구, 낯선 손엔 움찔해도 이내 주억거리며 부러진 돛대 같은 꼬리를 펄럭이던,
호구는 세상 다시 없을 착하디착한 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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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 2020-여름호 <문학청춘의 시조와 시인>에서
* 류미야/ 1969년 경남 진주 출생, 2015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 『눈먼 말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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