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림자 없는 태양/ 주영중

검지 정숙자 2020. 7. 23. 23:17

 

 

    그림자 없는 태양

 

    주영중

 

 

  난파선처럼

  떠내려가도 좋은 것이다

  어차피

  방향 따위는 없었다

  새어나온 기름처럼

  아이들의 웃음과 푸념이 떠다닌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는 그림자가 없다는데

  망망한 집에 겨울비 내린다

  밥과 식탁이

  기포처럼 터져버린다

  둥둥 사본만이 유일하다

 

  빨래가 통 속에서 돈다

  꼬불거리는 라면이

  퉁퉁 불어

  꼬여 있는 내장을 통과 중인 것처럼

  돈다는 건

 

  나선형처럼

  돌고 돌다

  마침내 도착한 텅 빈 사원

  기도는 조급하고

  이곳은 어둡고 차다

 

  나는 지금

  유현하지 않은 겨울이므로

  역신의 그늘을 걸친 계절이므로

  피를 훔쳐

  태양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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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0-6월호 <신작특집시>에서 
  * 주영중/ 2007년 『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