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의자 위의 책/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10. 11. 01:14

 

  

   의자 위의 책

 

   정숙자



  바람이 앉았던 의자에 슬픔이 앉는다

  오래 거닌 슬픔을 위해 바람은 자리를 비킨다

  슬픔은 내내 낮은 어깨를 하고 있다

  낮은 어깨는 그러나 그늘을 입었을지라도

  중심을 모아 푸른빛을 고른다

  몇 방울 이슬이 쉬어갈 아침을 근심한다

  눈물 아니다 슬픔의 방향은

  앞날을 향해 있다

  눈꺼풀 속에 잊어서는 안 될 풍경이 나타난다         

  일 나노미터 오차도 없는 두 어깨의 균형

  날으는 몸들은 그것을 잃지 않는다

  나비! 나비! 나비도 그렇게 하늘을 열었을 게다

  그것이 잡히면 울음도 출렁거림을 벗어나는가

  바람이 앉았던 의자에 귀 낡은 책이 펼쳐져 있다

  얼룩진 행간 사이로 햇살이 들락거린다

  팔 랑 팔 랑 두 쪽 날개에 실려

  한 생애가 묵묵히 자연으로 돌아간다

    -현대시2002.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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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