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한 메모
정숙자
오늘도 나는 어둠을 보았다. 내가 있으므로 어둠이 있고,
내가 있으므로 사물이 있다. 일체의 어둠과 혼돈이 나로부
터 비롯된다. 어찌 밝지 않음을 탓할 것인가. 어둠에 갇혀
사유하고, 어둠을 걸러 정화되며, 어둠을 딛고 나아가는 도
리가 글 쓰는 이의 항거다. 어둠은 여명의 또 다른 시간, 시
시각각 출렁이는 희비 또한 시간의 변화태에 불과하다. 우
리는 흔들림을 빚어 꽃무늬 놓고 상처를 다스려 깃털을 마
련해야 한다. 예기치 않은 어둠은 예견 못한 영감의 실마리
가 아닐까. 오늘도 나는 한 기基의 어둠을 3.5플로피에 저
장하였다.
-『문학나무』2005. 봄호_(시작노트를 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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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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