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도둑/ 김명인

검지 정숙자 2020. 7. 8. 01:50

 

 

    도둑

 

    김명인

 

 

  간밤에 도둑이 들었는지

  머릿속의 메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무식한 좀도둑이 아니라

  글줄을 아는 먹물 든 도둑

  싯귀 외엔 비망이 없었으니

  솜씨 좋은 도둑질에 감탄하다가도

  잃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가장 깊은 곳에 고여 있을 우물의 비의를

  도둑은 어떻게 훔쳐갔을까

  두레박의 질문으로 바닥을 읽어냈을까?

  도둑이 다녀갔고

  망각이 줄글로 떠서

  허공에 어질러져 있다

  단서는 백지의 외마디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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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 2020-여름호 <김달진문학상 역대 수상자 특집>에서

  * 김명인/ 1973년 ⟪중앙일보⟫로 등단, 시집 『파문』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길의 침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