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통곡의 미루나무/ 이광소

검지 정숙자 2020. 7. 5. 17:23

 

 

    통곡의 미루나무

 

    이광소

 

 

  사형장 입구에 통곡의 미루나무,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사형장으로 들어가기 전 사형수들이

  미루나무를 붙잡고 통곡을 했다는 팻말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통곡의 미루나무는

  죽음의 순간을 미루어보는 나무일까

  죽음 이후 무의 상태를 미리 보는 나무일까

  아니면 살아온 것을 후회하는

  잘못된 세상을 탓하는 통곡일까

  생각하는 사이

 

  미루나무 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수천 마리 나비들이 파닥거리고 있다

  사람의 가냘픈 숨결은

  나비의 날갯짓 한순간인 양

 

  사형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층에서 목줄이 허공으로 길게 내려져 있는데

  밥을 먹을 때 목이 맨 순간이 떠올랐다

 

  밖으로 얼른 뛰쳐나왔다

  울음소리 걸려있던 미루나무 가지 하나, 툭

  검은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는다

  아직, 살아 있느냐

  남은 생은, 어떻게 살 것이냐

  내 생을 지켜본 천사처럼

  존재의 이유를 묻는 성 싶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떠나온 뒤

  물에 젖은 나비들은 집까지 따라와

  창문에 알 듯 모를 듯 음어로 파닥거린다

  넓은 강물을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지

  어두운 밤에도 밖으로 향한 창은

  잠 못 들게 어른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

  * 『미당문학』 2020-하반기호 <신작시>에서

  * 이광소/ 1965년 제4회 대한민국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당선, 2017년 『미당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약속의 땅』 『모래시계』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희 터널_금은돌에게/ 조원효  (0) 2020.07.05
신록을 받다/ 김주완  (0) 2020.07.05
김삼의당(金三宜堂)을 생각하며/ 강명수  (0) 2020.07.04
먼지 인간 2/ 서안나  (0) 2020.07.04
동역학/ 정숙자  (0) 2020.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