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에덴의 후예들 외 1편/ 박분필

검지 정숙자 2020. 7. 1. 01:46

 

 

    에덴의 후예들 외 1편

 

    박분필

 

 

  가본 적은 없지만

  에덴동산은 거기 있었다

  뱀은 심심해서 여자를 속였고

  여자는 뱀의 입술에 닿았던 사과를 남자에게 먹였다

 

  그래서···

  사과는 여자와, 남자와, 뱀을 한꺼번에 먹어버렸다

  별빛 찬란하고 연초록 잎사귀 싱그럽고 꽃은 너무 아름답고 먹을 건 넘쳐나서 밤마다 별미로 여자는 사과가 된 남자를 먹었고 남자는 뱀이 된 여자를 먹었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서서히 먹혔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서서히 소화했다

 

  초록빛깔 단감이 붉은 태양을 먹고 붉게 물들어가듯

  당신은 나의 색깔로 물들어가고 나는 당신의 색깔로 물들어가고 나에게서 당신이 걸어 나오고 당신에게서 내가 걸어 나오고

 

  그리하여···

  나는 차츰 남자로 변해버렸고 당신은 차츰 여자로 변해버렸지

  그 영원할 것 같았던 푸르른 숲에

  난분분 백설이 내려 하얗게 덮어가는 계절

 

  남자의 기관에는 퇴화한 여자의 흔적이, 여자의 기관에는 퇴화한 남자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있다는, 우리는 세상이라는 벽에 그려진 얼룩이다

 

  어떤 얼룩은 쉽게 지워지고

  어떤 얼룩은 새롭게 그려지기도 하는

 

  우리는 에덴동산의 후예

  에덴의 후예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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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게게 오로라를

 

 

  빛을 펼쳤다 오므렸다

  반딧불들이 푸른빛을 내걸 때

  문득 오로라가 자기에게 

  다섯 명의 아이를 주었다는 북극 남자가 생각났고

  너는 에나보 호수 길로 사뿐사뿐 걸어왔고

  가장 밝은 빛의 반딧불이 쪽으로 기어갔지

 

  그리고 불꽃 한 송이를 꺾으려고 앞발을 드는 순간

  꽃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지

  오로라는 꿈속으로 사라졌지

 

  시신경을 다 끌어 모아

  허리를 활처럼 끌어당기고, 점프

  다시 허리에 힘을 가득 실어, 점프

  점프···

  점프···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지

  청혼은 아마도 내일로 미뤄야할 것 같은 밤, 망막에 촉촉한

 

  물기가 반짝였어

  개울을 지나 숲속을 지나 갸르릉 갸르릉

  타운하우스 뒷마당까지 너는 나를 따라왔지

  나는 그때 느꼈어

 

  녹색의 오로라를

  본 것 같았어

  휘두르는 채찍처럼

  빛을 뿌리는 오로라

 

  붉은 여우꼬리가 바위를 치면 일어난다는

  불의 여우,

  오로라를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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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표현』 2020-여름호 <이 계절의 신작시>에서

  * 박분필/ 1996년 『시와시학』 으로 등단, 시집 『창포잎에 바람이 흔들릴 때』 『산고양이를 보다』외, 동화집 『홍수와 땟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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