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구름
이령
나 해거름마냥 태생 노마駑馬의 습속이거니
너 하나 들여놓자 곡두마저 하나 더 늘어
계절의 권도를 잃고
행려만큼 엉거주춤 꽃차례마저 놓쳤네.
잡아 둔 그림만큼 엇나간 그림자를 구상하는 건
너나 나나 익숙한 이 무렵의 풍경이지만
나 더는 지나간 것들을 갈망하지 못하네.
가릉빈가迦陵頻伽 극락조를 꿈꾸다
어김없이 개 짖고 닭 홰치는 곳에서 깨는 일상
빛 가림 이음새 모지라지듯 비로소 자명한 저 생의 주름들.
누구의 갸륵한 말씀인가
해거름 번져오는 적막을 몰고
일망무제 시름 내려놓고 설움에 겨워
벼름벼름 저녁놀에 걸터앉아 여울지는 저 감정의 편린片鱗들.
느닷없이 파고든 심연에 부대낄 때 사랑하는 이여!
너와 난 이쯤에서 선고 없는 종신형에 든 것인가
하늘 언저리에 부려놓은 가둔 시간을
하릴없이 펼쳐든 망망 슬하의 저 무거운 형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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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정신』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이령/ 2013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로 등단, 시집 『시인하다』 『삼국유사대서사시-사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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