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서 빛나는 곳
동시영
로마는
낡아서 빛나는 곳
무너지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다
낡음이
시간의 미학을 건축하고
무너짐이 낳은
생기를 키를
키워 올린다
들이 역사를 갈아엎고
올리브를 심어도
녹빛 열매 속에선
기름이
낡아서 찬란한
시간의 눈을 반짝인다
로마는
모든 것의 젊음이
가장 부끄러워지는 곳
시간의 세포 속에서
낡은 것들이 마음 놓고
낡을 수 있는 곳
-p. 87-88, (시집, 『미래사냥』)
▣ 괴테가 있는 여정 위에서 (발췌)
로마는 너무나 많은 볼거리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갈 때마다 시간은 늘 부족한 곳, 감동의 깊이는 더욱 커지고, 로마의 모든 것을 통해 고대의 향가까지도 마음 가득 실어 올 수 있는 역사의 학교, 박물관이다. 내게도 그 무수한 볼 것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스티나였다. 다시 또 로마를 만나게 되어 콜로세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옥타비오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즐거움과 기대에 찬 표정을 하고 시스티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림이 아닌 조각의 느낌으로 다시 또 다가오는 시스티나 천장화는 경이와 존경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했다. 미켈란젤로가 넘었을 예술 창작이 주는 찬란한 고통과 그것을 완성한 후의 환희가 하늘의 별처럼 천장에 떠 있었다. 대낮 속의 신비로운 밤처럼 예술로 뜬 신비의 별빛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도 각자의 도취에 빠져 예술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1508년 5월 10일 착수, 1512년 10월 30일 완성의 4년 5개월 동안 천장화를 그리고 등이 활처럼 휘어지고 회반죽이 눈에 떨어져 시력을 많이 손상당했다는 이야길 다시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다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심판에 가득한 391명의 인물들이 살아 나와 그 후의 다른 모든 예술품들의 미숙한 예술성을 심판하고 있는 듯했다.
괴테는 석고장이한테서 주피터의 거대한 두상을 사다가 로마 코르소가의 숙소 빛이 잘 들어오는 침대 맞은편에 놓는다. 그리고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그 두상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또한 로마에서 최초로 그가 마음 끌렸던, 주노의 거대한 두상을 새로 주조한 작품을 사들인다. 괴테는 이에 대해 어떤 말로도 그 매력을 설명할 수 없고 호모의 시와 같은 것이라 했다.
그리고 로마에서,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가장 많이 썼다고 하는 「이피게니에」를 완성한다. 잠자리에 들 때 다음 날의 집필 일정을 세워 놓았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한 줄 한 줄, 한 단락 한 단락 규칙적 운율을 밟게 하면서 썼다고 한다. (p.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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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영 시인의 세계문학기행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2020. 6. 12. <한국학술정보> 펴냄
* 동시영/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문학부에서 수학, 한국 관광대학교 교수와 중국 길림 재경대학교 교수 역임.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낯선 신을 찾아서』 『십일월의 눈동자』등, 그 외 저서 『한국문학과 기호학』 『현대시의 기호학』등, 박화목문학상 · 한국불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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