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열반
곽말약(중국, 1892-1978, 86)
향나무는 높게 쌓였고
이미 봉은 날아다니다 지쳐
그들의 죽을 날 멀지 않았네
한 무리의 뭇새들
하늘 밖에서 날아와 죽음을 보네
봉의 노래
아아!
어둡고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우주여, 우주
나 그대를 애써 저주하려니
남쪽에는 하나의 묘둥지일세
- p. 207.
▣ 곽말약 시의 외침과 절규, 북경의 매력(발췌)
곽말약(1892-1978, 86)과 노신(1881-1936, 55)은 중국이 자랑하는 신문화 운동 중 문학 창작 부문의 선구자들이다. 조금 더 세분화해서 이야기한다면 노신은 구문화의 비판에, 곽말약은 중국의 미래를 만들어 갈 새로운 의식의 창조와 실천에 좀 더 중점을 두었다.
곽말약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1892년 사천성四川省 낙산에서 태어났다. '말약'이란 이름은 그가 일본 유학 때 사용하기 시작한 필명이다. 이는 그의 고향에 있는 강, 말수沫水와 약수若水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고향을 흐르는 두 개의 강이 그의 필명에 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의 흔적이 필명에 물결무늬 져 드리워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본명은 개정開貞이다.
곽말약은 1914년 도일하여 후쿠오카의 큐슈제국대학 의대를 들어갔다. 그는 1916년 8월 사토 토미코라는 일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친구를 병문안 갔다가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다음 해 의대에 합격하기도 했지만 임신으로까지 진행된 그들의 사랑을 위해 학교를 그만둔다. 두 사람은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해 말 오카야마로 함께 이사한다. 그는 그녀를 안나라고 불렀다.
그러나 곽말약에게는 이미 부모가 정해 준 장경화라는 부인이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혼자서 곽말약의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곽말약과 안나와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곽말약은 안나와 다섯 아이의 곁을 떠나 중국으로 귀국한 후 항일운동에 참여한다. 그 후 곽말약에겐 북벌전쟁에 함께 참전한 전우 안린과의 사랑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참전 중 병으로 고생할 때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곽말약은 1938년 1월 중국 무한에서 젊고 아름다운 배우 위리첸을 만난다. 그녀는 20대의 꽃 같은 나이였다. 곽말약은 이후 40여 년의 삶을 그녀와 함께하게 된다. 오늘 내가 찾아온 이곳 곽말약기념관이 그들이 함께 삶의 마지막 부분을 가꾸어 간 공간이었다. (p.199-200)
곽말약은 어린 시절 두보와 이백 등이 쓴 중국 고대시를 읽었고 소년기에는 율시, 절구 위주의 시를 창작했다. 그러나 일본 유학 이후 그의 시는 이전과 매우 달라졌다. 1914년 곽말약은 북경을 출발하여 부산을 거쳐 동경에 도착했다. 그가 말했던 인생 최고의 근면과 노력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반년의 노력으로 그는 제1고등학교에 들어갔고 대사관이 주는 장학금을 획득하기도 했다.
일본 유학 시절 곽말약은 동경에서 욱달부, 성방오 등과 '창조사'를 만들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내세운 창작과 번역 활동을 했다. 1922년에는 『시경』을 현대적으로 번역하여, 그 결과물인 『권이집卷耳集』을 이듬해 상하이에서 출판했다. 또한 40수의 연애시를 뽑아 『국풍』을 만들기도 한다. 이 시기 그는 「문학의 본질」 등의 논문을 발표하고 시가의 본질과 운율의 기원, 구어 시의 필연성 등을 강조했다.
『권이집』 서언에서 그는 "중국 민족은 본래 자유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민족인데, 수천 년 동안 지나친 예의 등의 교육하에 이 같은 것이 거의 사멸되다시피 되었다. 가련하다. 우리 최고의 우수하고 아름다운 평민문학이 이미 화석이 되었도다"라 하였다. 그는 문학의 원시세포는 문자보다 정성의 표현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며, 『시경』에서 시의 본질인 음악-시가-춤의 삼위일체 이론을 읽어 냈다고 쓰기도 했다.
같은 논문집에 실린 산동 사범대학 문학원의 위건魏建 교수가 쓴 「다시, 여신重識, 女神」 또한 곽말약 연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문에 따르면, 곽말약의 『여신』은 새로운 논리 원칙과 미학 원칙을 탄생시켰다. 곽말약의 시는 현대 중국 신시 표현의 새로운 예술법칙, 내재율과 새로운 시풍을 창조했으며, 후대 중국 신시 수립을 위한 성공적 모델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곽말약은 중국 고전 시가에서 항상 보아 온 '행화', '봄비', '청풍' 등의 시어 대신 '태양', '지구', 무한한 태평양' 등 거대한 생명적 의식을 드러내는 시어를 사용하여, 변혁하는 중국이 필요로 했던 움직임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청춘 · 생명 · 열정의 힘을 주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p.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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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영 시인의 세계문학기행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2020. 6. 12. <한국학술정보> 펴냄
* 동시영/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문학부에서 수학, 한국 관광대학교 교수와 중국 길림 재경대학교 교수 역임.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 사냥』 『시간의 카니발』등, 그 외 저서 『노천명 시와 기호학』 『현대시의 기호학』등,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 동국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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