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며칠 후/ 김소연

검지 정숙자 2020. 6. 16. 00:31

 <2020, 제21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작> 中

 

    며칠 후

 

    김소연

 

 

  며칠 후에 나는 서울에 간다. 자전거를 타고서 자전거를 타고 갔던

  지난번이 기억나겠지. 그때는 흘러내리는 목도리를 다시 목에 감으며 찬 바람을 맞았지.

  역앞에서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고 부재 중 전화를 확인했었지

  그때 누군가의 부음을 들었다.

 

  오래 서 있었다.

  추웠지만 잘 몰랐다.

 

  며칠 후부터 그 역은 운행이 중단되었다.

  가던 곳에 가려면 우선 서울을 경유해야 했다

 

  며칠 후에 나는 읽던 책을 다 읽는다. 다음 챕터는 "악몽 그 자체인 사람들"이지만

  다 읽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또 다른 책을 읽겠지. 안경을 쓰고, 또 잠시 안경을 벗고.

  책을 읽는 동안에 동네 재개발이 확정되고 애용하던 드라마는 끝나가고

  무언가를 챙겨먹고

  조금만 더 그렇게 하면 예순 살이 되겠지.

  이런 건 늘 며칠 후처럼 느껴진다.

  조금만 더 그렇게 하면 예순 살이 되계지.

  망고가 숙성되길 기다리는 정도의 시간.

 

  그토록이나 스무 살을 기다리던 심정이

  며칠 전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편으로

 

  기다리던 며칠 후는

  감쪽같이 지나가버렸다.

 

  며칠 후엔 눈이 내리겠지*. 안 내린다면 눈이 내리는 나라로 가보고 싶겠지.

  지난 번에 가보았던 그 숙소 앞 골목에서 눈사람을 만들겠지.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보태줄지 말지 잠시 머뭇거리겠지.

 

  너무 추웠고

  너무 좋았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망고를 꺼내어 먹었다. 목도리를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

  서울에 가서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목도리가 없네 했다.

     -전문-

 

 

  * 프란시스 잠의 시 「며칠 후엔 눈이 내리겠지」(시선집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읻다, 2018년)에는 '레오폴드 보비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레오폴드 보비가 답시를 적는 마음으로 이 시를 적어보았다.

 

  *심사위원: 오형엽  김언  조강석  안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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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0-5월호 <신작특집>에서

  * 김소연/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극에 달하다』 『눈물이라는 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