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
정숙자
버려진 꽃밭이 있다. 그늘져 있다. 버려진 꽃밭을 가꾸면
누구든 꽃밭의 주인이 된다. 꽃밭은 호미 하나로 충분하다.
꽃밭을 가꾸면 나비와 새소리와 고양이의 색조가 섞인다.
구름과 바람과 달과 쇠야기도 그 거미줄에 투명하게 구른
다. 하늘까지도 꽃밭 앞에서는 꽃을 돋우기 위한 수틀일
뿐… 꽃밭은 가꿔 준 이를 다시 가꾸고, 가꿔 준 이가 시인
이라면 책상 위에서도 붓꽃이 피게 한다. 가꿈! 이렇게 이쁜
말을 나는 꽃밭에서 덤으로 주웠다. 내가 너를 가꾸면 너
또한 꽃밭밖에는 다른 나쁜 게 될 수가 없다. 인간이 흙으
로 빚어졌다는 걸, 흙이라는 걸 자꾸 믿는다.
-『문학과창작』200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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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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